민주당 정권 재창출 시 '탈원전' 되풀이 우려
'전기본' 원전→재생에너지 중심 개편 가능성
"에너지 정책 백년대계 필요…일관성 가져야"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된 이후, 오는 6월 3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서 세종 관가 곳곳이 술렁이고 있습니다. 특히 변화의 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올 것으로 보이는 곳 중 하나는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인데요.
산업부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은근하게 퍼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윤 정부 내내 '친원전' 기조를 앞세워 에너지 정책을 재편해 왔지만,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할 경우 다시 '탈원전' 기조로의 급반전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 문재인 정권 당시 '탈원전 로드맵'을 내걸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에 속도를 냈던 바 있습니다. 단순히 '탈원전'이란 방향성만 잡은 게 아니라 법·제도·예산 전반에 걸쳐 체계적으로 밀어붙였죠. 이에 당시 원전 업계는 고사 직전에 내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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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의 신한울원자력발전소 전경 [사진=뉴스핌DB] |
반면 윤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탈원전 정책은 실패"라고 규정하며 원전의 부활을 암시했습니다. 국정 과제에도 아예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원전 최우선 활용'을 명시했죠. 윤 정부는 임기 동안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소형모듈원자로(SMR) 육성, 원전 수출 전략 수립 등을 통해 사실상 정책 기조를 정반대로 뒤집었습니다.
만약 이번 조기 대선에서 정권이 다시 민주당에게로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문 정부의 '탈원전'이 윤 정부 들어 '친원전'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또다시 노선을 정반대로 틀어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와 관련 업계로서는 그동안의 성과와 실적, 그려놨던 미래 계획 등이 모두 망가지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을 텐데요.
산업부의 한 간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정반대로 뒤집히는 상황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가능하겠냐"며 "현장에서는 늘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우려 사안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수정 여부입니다. 전기본은 국가의 안정적인 중장기 전력 수급을 위해 2년 주기로 수립하는 계획안인데요. 계획 기간은 향후 15년으로, 내용으로는 ▲전력수급 기본 방향 ▲장기 전망 ▲발전설비 계획 ▲전력수요 관리 등을 포함합니다.
앞서 윤 정부에서는 원전을 중심으로 전기본의 내용을 꾸렸습니다. 원전을 핵심 기저전원으로 삼아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마련하고, 향후 15년 동안 원전 비중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었는데요. 하지만 새 정권이 들어서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수급 전략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다는 게 산업부 내부의 판단입니다. 이 경우 기존 계획은 백지화로 되돌아갈 수도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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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민주당은 가장 최신 회차인 11차 전기본을 두고 정부와 극한 대립을 빚었던 바 있습니다. 당초 정부는 대형 원전 3기와 SMR 1기 등 총 4기의 원전을 신규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민주당은 "원전 비중이 과도하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원전 1기를 줄이겠다는 절충안을 택했는데요. 숫자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산업부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원전 생태계의 청사진을 두고 발목이 잡힌 셈입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여당은 원전에, 야당은 재생에너지에 각각 중점을 두고 있어 어느 전원이 우선이냐를 두고 매번 갈등이 벌어진다"며 "사실 에너지 믹스를 위해서는 모든 전원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정치적인 대립 구도로 굳어져 버려 답답할 따름"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밖에 전기요금 정책도 산업부가 긴장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윤 정부는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하며 전담 기관인 한국전력공사의 누적된 적자를 줄이기 위해 요금 인상을 단행해 왔는데요. 그동안 민주당은 이 같은 기조를 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만일 민주당이 집권하게 될 시 요금 인상 억제 또는 인하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관가 안팎에서는 향후 대통령 후보들이 내세울 '에너지 공약'의 강도와 방향성에 따라 산업부의 업무 기조도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예컨대 유력한 어떤 후보가 '탈원전 재개'를 공약으로 내세울 경우, 산업부는 지금까지 준비해 온 원전 중심 전기본과 원전 수출 지원 전략, SMR 육성 로드맵 등을 전면 수정하거나 보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원전 확대'를 더 강하게 피력하는 후보가 등장한다면, 산업부는 계획 수정을 넘어 기존보다 더 빠른 속도의 정책 실행을 요구받게 되겠죠. 탈원전으로의 회귀보다는 낫겠지만, 산업부로서는 이 경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는 없겠는데요.
산업부 간부급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은 최소 50년,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고 수립해야 하는 분야인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에너지는 국가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사안인 만큼, 정치와는 무관하게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불과 두 달 후에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물밑에서 잠룡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단순 '표심'을 더 많이 얻는 데에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 대선이란 급류 속에서 과연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 이제 국민 모두가 지켜봐야 할 타이밍입니다.
r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