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 사법 시스템 전면 부정 중대 범죄"
윤 지지자들, 법원 이어 헌재 재판관까지 위협
[서울=뉴스핌] 조승진 기자= "아유, 그날은 무슨 전쟁이 난 줄 알았지. '죽여라'는 외침이 뒷편 우리 집까지 들렸다니까. 무서워서 제대로 잠도 못 잤어"
서울서부지법 인근에 사는 한 주민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벌어진 지난달 19일을 이같이 기억했다. 18일 뉴스핌 취재를 종합하면 폭동 사태가 벌어진 한 달 뒤쯤인 전일 오후 12시 무렵, 서부지법 후문에는 경찰 버스가 인도를 막고 인근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태가 벌어진 후 경찰은 서부지법 인근 곳곳에 인력을 배치했다. 인근 인도는 통제하지 않았지만, 이날은 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대신, 차량으로 출입을 막고 있었다.
◆ 7억원 피해 본 서부지법…'법률서비스' 덩달아 지연
서부지법 정문 쪽 파손된 직원 출입문과 창문은 새것으로 교체된 상태다. 하지만 외벽은 패널을 덧대어 놓았고, 한쪽에는 여전히 패인 흔적이 그대로인 곳도 있었다. 보수가 완료될 때까지 다소 시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같은 피해는 지난달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직후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의 경찰 저지선을 뚫고 내부로 난입하면서 발생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지자들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아다니며 유리창과 집기 등 기물을 파손한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추산한 해당 폭동에 대한 물적 피해는 6억~7억원 규모다. 파손 내역은 외벽 마감재와 유리창, 셔터, 폐쇄회로(CC)TV 저장장치, 출입 통제 시스템, 책상 등 집기, 조형 미술작품 등이다. 법원행정처는 서울서부지법 이 같은 피해를 발생시킨 이들 전원에게 재산상 손해와 정신적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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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다음날인 지난 1월 20일(좌) 외벽 모습과 이달 17일 외벽 모습. 파손 부위에 패널을 덧대 보수 중이다. [사진=조승진 기자] |
경찰은 서부지법에 난입한 이들과 그 전날 법원 주위에서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량을 공격한 시위대 등 125명을 특정하고 그중 74명을 구속했다. 구속된 이들 중 70명은 검찰에 송치됐다.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검찰 송치 인원은 향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17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서부지법 폭동 수사와 관련해 "125명을 수사했으며, 이들 중 74명을 구속했고 나머지 51명을 불구속 수사하고 있다"며 "구속한 74명 가운데 70명은 검찰에 송치했고, 나머지 4명도 순차적으로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부지검 관계자는 "이 사건은 법치주의와 사법 시스템을 전면 부정한 중대한 범죄"라며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기소한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에는 경찰관 폭행 혐의(공무집행방해 등), 법원 경내로 침입한 혐의(건조물침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 등이 탑승한 차량의 이동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특수감금 등), 법원 근처에서 취재 중인 언론사 소속 리포터의 머리를 가방으로 내리친 혐의(상해), 법원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밀치는 등 폭행한 혐의(특수건조물침입·특수공용물건손상 등) 등이 담겼다.
해당 폭동 다음날에도 서부지법은 재판 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직원과 재판 당사자, 변호인 등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하고, 민원 업무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민원 업무를 보러 서부지법을 찾은 시민들은 "한시가 급한데 언제 해결되는 거냐", "민원 업무가 언제 재개될지 몰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달 5일부터 서부지법은 공개 재판 방청을 재개하고 청사와 건물도 방문 목적을 밝히면 출입을 가능하게 했다. 중단된 민원 업무도 이달 중순부터 재개할 예정이다. 폭동 사태로 인해 시민들이 누려야 할 법률서비스가 한 달 넘게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 헌재 공격하는 윤 지지자들…국힘은 '항의 방문'까지
해당 폭동 다음날 일부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헌법재판소로 몰려가 "탄핵 재판이 불공정하다"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에도 이들은 헌재 앞에서 일 시위를 벌이고, 재판관을 위협하는 등 법치주의를 존중하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날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 거주지로 추정되는 서울의 한 아파트 앞에서 "문형배 사퇴", "탄핵 무효" 등의 구호를 외치고, '음란 판사 문형배'라고 적힌 피켓도 흔드는 등 큰 소란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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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김기현, 나경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최소한 방어권 보장 촉구 및 불공정성 규탄과 관련해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을 면담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핌 DB]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문 대행에 대한 신상을 털고, 거짓 정보를 퍼트리며 인신공격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임박한 것으로 보이자, 재판관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 정치인들 역시 헌재 결정에 대해 불복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헌재 재판관에 대한 위협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 17일 국민의힘 의원 36명은 헌법재판소를 찾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의 편향성과 불공정에 대해 항의했다.
국민의힘 대표였던 김기현 의원은 "헌재는 부실한 심리를 거듭 반복하면서 '답정너'로 속도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며 "오죽하면 (헌재 재판관들이)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겠느냐"는 발언을 했다.
나경원 의원도 "헌재는 그 구성 있어서 이념성, 편향성을 많은 국민이 걱정했다"며 "막상 시작된 헌법재판 과정에서 자의적 절차 운영, 소송 지휘권 남용, 편향적 예단을 보면서 그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했다.
현재 경찰은 헌재 요청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상시 경호 대상인 문 대행뿐 아니라, 다른 재판관 7명도 개별 경호 중이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이후, 헌법재판소장을 포함한 모든 재판관이 경호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hogiz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