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 결과
혁신성 저하된 연구개발 분야...신제품 개발 45% 등
근로시간 규제, 연구 인력난에도 부정적 영향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 식품제조 중소기업 A사는 해외 바이어의 요청에 따라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주52시간 제도로 개발실험이 중간에 끊겨 집중도가 떨어져 생산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 바이오 제약회사 B사는 장기간 관찰이 필요한 물질관리와 연구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반 연구인력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활용해 유연하게 근무하고 있지만, 부족한 근로시간을 관리자급 직원들이 채우면서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일부 관리자급 직원들은 피로가 누적되면서 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는 상황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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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 도입 5년 만에 기업 연구부서 4곳 중 3곳이 연구개발 성과가 줄었다고 응답했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만이라도 획일적인 근로시간보다는 노사 자율합의에 따른 자율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회장 구자균)는 16일 기업부설연구소·연구개발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 52시간 제도가 기업의 연구개발에 미치는 영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기업 연구부서들의 75.8%는 '주 52시간제 시행 후 연구개발 성과가 줄어들었다'고 응답했다. '연구개발 성과가 증가했다'는 응답은 24.2%다.
제도 시행 이후 혁신성이 저하된 연구개발분야는 '신제품 개발' 분야가 45.2%로 가장 많았고, 이어 '기존 제품 개선'분야(34.6%), '연구인력 역량축적'(28.5%), '신공정 기술개발'(25.3%) 등의 순(복수응답)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근로시간 규제를 포함해 연구개발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여건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 중, '과학연구 관련 법률이 혁신을 지원하는 정도' 지표를 살펴보면 2018년 37위(총 63개국)에서 2024년 35위(총 67개국)로 여전히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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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상 기업의 53.5%는 동 제도로 '연구개발 소요기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소요기간이 줄었다'는 45.4%, '모른다'는 1.1%다. 얼마나 늘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해당 기업의 69.8%가 '10% 이상'을 꼽았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기업의 연구개발부서에 주 52시간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연구개발 인력 현황을 묻는 설문에 기업의 82.2%가 '부족하다'고 응답(매우부족 17.4%, 다소 부족 64.8%)했고, 적정하다는 응답은 17.6%에 불과했다.
이러한 인력난 원인에 대해 기업들은 '회사 규모 및 낮은 인지도'(58.9%), '높은 인건비 부담'(58.4%)을 꼽았다. 이어 '지리적으로 어려운 접근성'(31.0%), '임금 등 낮은 처우'(30.5%), '원하는 인재가 없어서'(25.6%), '기존 직원의 이직' (22.7%) 등의 순이었다.
대한상의는 "근로시간 규제를 중소기업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연구인력들이 중소기업에 유입되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제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행 유연근로시간제는 기업의 37.8%만이 도입하고 있다고 응답해, 제도 활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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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기업들은 R&D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적합한 근로시간제로 '노사가 합의를 통해 자율적 근로시간 관리'(69.4%)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이어 '연구개발 업무에 대해서만이라도 추가 8시간 연장근로 허용' 32.5%, '연장근로 관리를 1주 12시간에서 월/분기/반기/년 단위로 합산 관리' 23.4%, '6개월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 12.7%, '고소득 전문직 대상 근로시간 적용제외 방식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10.8%, 1년 단위 선택적 근로시간제 7.0% 순(복수응답)이었다.
김종훈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상임이사는 "급격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기술혁신이 요구되는 시기"라며 "특히 반도체 등 국내 핵심 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R&D부문에 있어 유연한 근로시간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업무의 지속성과 집중성이 중요한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유연한 제도적용과 함께 제도의 당초 취지인 사회적 약자의 장시간 근로를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