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35조 '슈퍼추경' 제시…AI 등 경제성장에 11.2조 편성
트럼프 행정부, 반도체보조금 폐지·기준 변경 가능성 시사
R&D예산, '12·3 비상계엄'으로 정부안 대비 1000억 감액
전문가 "韓경제 경기하강 심각…1분기 내 신속추경 필요"
더불어민주당이 총 35조원에 달하는 '슈퍼추경' 계획안을 발표했다. 최근 여야 간 추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이 구체적 계획안을 제시하면서 추진 동력에 더욱 불이 붙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추경의 규모와 용처 등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뉴스핌>은 민주당 추경 계획안의 세부적 내용과 이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제언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세종=뉴스핌] 이정아 기자 = 한국 경제에 저성장·대외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가 덮치면서 국회를 중심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자체적으로 수립한 35조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정부에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전쟁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한국도 사정권으로 들어오면서 반도체·인공지능(AI)·연구개발(R&D)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담겼다.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본예산 우선집행'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상목 권한대행이 정부와 국회, 여야 대표가 참여하는 국정협의체를 통해 추경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벚꽃추경'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 반도체·AI·R&D 분야에 5조 편성…감액예산안 여파 '회복'
14일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35조원 규모의 '슈퍼추경'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35조원 중 민생회복 분야에 23조5000억원, 경제성장 분야에 11조2000억원을 각각 편성했다.
최근 한국 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졌다.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1.8%로 전망했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대 7번째로 낮은 성장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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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 곤두박질친 기업·가계 소비심리와 경기위축도 저성장을 고착화시키는 원인이다.
민주당이 경제성장 분야에 11조2000억원을 편성한 건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경제성장 분야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 AI, R&D 분야에 5조원을 담았다.
현재 트럼프 신정부는 반도체법(Chips Act) 보조금 지급 조건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만약 반도체법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조건이 변경된다면 우리 기업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인디애나와 텍사스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SK하이닉스의 투자 예정 규모는 38억7000만달러로, 보조금 규모는 4억8500만달러(약 6600억원)다. 삼성전자의 투자 예정 규모는 450억달러로, 보조금 규모만 47억4500만달러(약 6조8000억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변경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어떤 수단으로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에서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에 재정 지원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AI 추경도 초미의 관심사다. 중국의 생성형AI 챗봇 '딥시크'가 출시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딥시크는 기존 AI 모델 대비 비용은 절반으로 줄였고 기능은 높인 것으로 확인됐다.
딥시크 출시 이후 세계 각국은 '가성비' AI 모델 개발에 앞다퉜는데, 한국은 감액 예산안 여파로 글로벌 트렌드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재부는 얼마 전 개최된 '선도형 R&D 성과확산 콘퍼런스'에서 딥시크로 글로벌 기술패권이 재편되는 변곡점에 서 있다며 연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야당은 정부안 대비 감액된 R&D 예산의 '정상화'도 추진한다. 올해 R&D 예산은 29조6000억원으로, 정부안 대비 1000억원 삭감됐다.
특히 올해 개인기초연구 R&D는 1조9052억원으로 국회에서 55억9100만원 감액됐다. AI 일상화 확산 R&D도 36억원 삭감됐다.
비상계엄으로 상임위에서 증액됐으나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사례도 다수다. 대표적으로 인재활용확산지원 R&D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127억원 증액됐지만 본예산에 반영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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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AI·R&D 예산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추경 상단에 위치하게 됐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지방정부 투자 촉진을 위한 지방재정보강 예산 2조6000억원, 고교 무상교육 지원 및 5세 무상 보육 예산 1조2000억원, SOC 투자 1조1000억원, 기후위기대응 1조원 등도 함께 담았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 세계에서 AI 등 첨단산업에 대해 투자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인력양성이든 연구지원이든 국가가 민간업체에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최 대행, 추경 단서 조항으로 '국정협의회'…20일 4자회담
민주당이 제시한 '슈퍼추경'은 정부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규모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추경 질의에 대해 "신속한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필요하지만, 기존 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올해 673조원에 이르는 '본예산 신속집행' 기조 방침을 유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기재부는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으로 추경을 우회적으로 반대하기도 했다. 회계연도 개시 전 배정이란 국가재정법에 따라 확정된 내년 예산 중 일부를 회계연도 개시 전 각 부처로 예산을 배정하는 것을 뜻한다.
1월 1일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신속 집행해 추경의 효과를 거두겠다는 의도다.
다만 최 권한대행은 "추경에 대한 원칙부터 논의가 필요하다"며 "이 논의에는 추경의 필요성과 시기, 규모, 사업 등 모든 것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야정이 참여하는 국정협의체가 가동되면 추경을 논의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단 것이다.
여야정은 최근 최상목 권한대행, 우원식 국회의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참여한 국정협의회를 오는 20일 열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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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국정협의회에서는 민주당이 제시한 추경안을 중심으로 추경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도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불리는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예산을 확보해야 하므로, 이날 만남에서 추경 규모와 시기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부의 추경 편성안이 국회에 제출된 시점을 보면 16회 중 12회는 상반기에 편성·제출됐다. 분기별로 1분기 4회, 2분기 8회, 3분기 4회다. 4분기에는 편성된 사례가 없었다.
국회에 16회 추경 중 14회를 2개월 이내에 심의·의결해 신속한 추경 편성을 도왔다. 특히 2주 이내 심의·의결된 사례도 3회 존재하며 1개월 이내(8회), 2개월 이내(3회), 2개월 초과(2회)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 편성이 1분기 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 교수는 "경기 하강이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이번 추경에 모든 걸 다 담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추경 논의에 최소 1~2달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빨리 의논해서 빨리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도 "올해 추경 편성에는 '조기대선'이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차기 정부에서 틀어진 세입경정 등을 맞추기 위해 2차 추경을 할 수 있다"며 "여야정 합의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plu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