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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이제 이성과 침착을 되찾아야 할 때

기사입력 : 2024년12월07일 08:00

최종수정 : 2024년12월07일 08:56

불면증과 불안, 한숨과 하늘 보기

처음에는 방송사고인가 생각했다. TV 화면이 갑자기 바뀌더니 대통령이 나와 담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몇 마디 듣고 나서 바로 "계엄령이구나"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중반쯤 이르렀을 때 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1980년 봄에 시작된 계엄 시대를 살아온 세대는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산다. 그해 나는 대학 새내기로 있다가 캠퍼스가 폐쇄당해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공부를 할 수 없어 허송세월로 보내느니 병역의무를 마치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자대배치 후 중대원들과의 첫 만남은 트라우마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고참병들은 다짜고짜 비상대기를 시켜 고생시킨 장본인들이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언어폭력과 주먹, 그리고 발차기는 연약한 20대 청년의 몸통과 마음을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맞으면서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국민인데, 당신들만 고생하고 힘들었느냐고 마음속으로 항변했다. 그저 무방비로 날아오는 주먹과 군홧발을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후유증으로 군 병원으로 후송되어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다. 고통의 시절을 함께 보낸 동 세대들은 잊지 못할 수많은 트라우마를 각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새벽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바로 국무회의 통해 국회 요구 수용해 계엄 해제할 것. 다만 즉시 국무회의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오는 대로 바로 계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2024.12.04 leehs@newspim.com

이제는 세계적 민주국가로 발돋움했다고 믿었다. 세계가 우리를 경이로운 나라로 부러워한다고 자부심도 있었다. 후발국으로 시작해 산업화와 제도적 민주주의를 이룬 국가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분단국으로 이룬 성과라 더 빛이 난다.

"아니 이 시대에 어떻게 계엄이 ….."TV를 보며 생각은 정지되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다시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말았다. 다시 그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났다.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깨면 한숨이 나오고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늘을 멍때리는 습관이 생겼다. 맑은 하늘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상태로 눈만 허공을 향해 있다. 스웨덴에 있는 직장동료들이 어떤 상황이냐고 안부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계엄과 이후 상황에 관해 설명해 달라고 세미나가 잡혔다.

세미나 발표를 위해 조용히 앉아 정리하며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 국민 앞에서 선서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준수가 가장 먼저 언급될 정도로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이 부여한 계엄권을 그 위헌성을 생각하지 않고 행사하고 말았다. 비상계엄은 군인이 행정과 사법, 언론을 장악하고 선출직 정치인과 국민의 정치 행위를 금지시키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모든 활동을 검열하고 통제한다. 다시 암흑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1987년 이후 여야 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제도적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뜨거운 물이 없었던 시절 찬물로 세수하고 학교 가던 시절을 이야기하면 "꼰대"라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어린 학생들도 수학여행으로 다녀오는 시대, 우리의 문자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시대가 될지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세대로서 우리가 이룬 두 가지 성취는 큰 자산이고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다시 7~80년대의 계엄령이라니. 우리가 이룬 것을 이렇게 허무하게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상심을 되찾는 일이다.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를 이룩한 국민이다. 이제 마지막 한 단계만 더 딛고 올라서면 보다 안정된 고도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다 우리가 쌓아 올린 경제와 문화적 자존감, 민주주의는 일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세계는 이제 조심스럽게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시하기 시작했다.

헌법적 질서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일상이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석고대죄의 자세로 계엄선포로 놀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국민 앞에서 진정 어린 대통령의 사과부터 있어야 한다. 이를 하지 못하면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남은 기회를 차 버리는 것과 같다. 대국민 사과와 함께 야당에도 사과하고 정치적 타협을 제안해야 한다. 접을 것은 접고, 대담하게 양보해야 할 것은 양보해 야당을 진정한 파트너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선행되지 않고는 국민도, 야당도 절대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더 이상 대통령의 권위와 임무는 인정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촌각을 다툰다. 시급하니 지금 당장 TV 앞에 서야 한다.

둘째, 여야는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 임기 단축과 함께 4년 중임제와 국회의원 동시선거를 위한 개혁을 논의할 여야비상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 당장 12월부터 가동해 합의를 통해 헌법 개정안을 내놓고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 개정을 마쳐야 한다. 이 새로운 헌법으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함께 치른다면 안정을 통한 정권 이양이 가능하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대통령과 야당이 합의한 거국내각을 함께 꾸려 개헌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대통령과 야당은 국가의 안위와 불안해하는 국민만 바라보고 대타협을 끌어내야 한다.

셋째, 검찰은 이제 헌법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정신으로 대통령 눈치 보지 말고 공명정대한 수사로 가장 이른 시일 안에 내란죄 성립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기회에 검찰은 새로운 조직으로 태어나기 위한 내부의 자정 운동도 함께 진행되길 바란다.

넷째, 국민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두시위는 이제 끝내고 모든 일정을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야당에 온전히 앞으로의 정치 일정을 맡기고 직장과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통령을 이 기회에 끌어내리는 것이 마음은 후련할지 모르지만 결국 국가 분열과 갈등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대통령을 하야시키거나, 탄핵으로 몰고 간다면 긴 국정 공백으로 생긴 불확실성은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트리게 하고 국민은 다시 찬반으로 갈리는 대혼란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혼란과 대립 후 진행되는 급조된 선거를 통해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것은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을 뽑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1980년의 봄을 겪은 세대처럼 젊은 세대들이 똑같은 트라우마를 겪게 해서는 안 된다. 이성과 평상심을 되찾아 차분하게 헌법을 개정하며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미래 세대들에게 높은 국격을 갖춘 민주주의를 물려주는 것은 이 시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의무이기도 하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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