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기 전 경남 거제시 부시장
현재가 거듭되어 미래를 만들 듯이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도시의 정체성이다. 도시는 인류가 창조한 공간으로 인류의 주된 정주 공간이자 정주 환경이다.
도시의 기원은 고대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인 우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도시들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박환기 전 경남 거제시 부시장 |
도시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 세계인의 76%, 우리나라 인구의 91%가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지속될 것이며, 작은 도시들은 점차적으로 소멸하고, 도시화가 심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도시가 인류 발전을 견인한다는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의 기본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인류 발전의 주체로서 도시의 역할을 강조하며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 시작 이후 도시가 인재의 집적과 혁신을 통해 문화와 과학, 경제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인재 유치를 위한 도시의 적정규모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하지 않으며, 대체로 100만 이상의 대도시를 예로 든다. 고대 아테네, 중세 피렌체, 베네치아, 근대 버밍엄, 보스턴, 현대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밴쿠버, 싱가포르 등 흥미롭게도 그의 주장에 따른 성공적인 도시 사례에는 다양한 규모가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유형의 도시를 출현시킨 산업혁명은 도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주거, 치안, 위생, 환경 오염, 전염병 등의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설계와 계획 이론이 등장했다. 도시는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러던 과정에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전에 우리가 누리던 일상은 사라지고 정치, 경제, 산업 등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였다. 이는 코로나19가 가속화 시킨 도시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2021년 세계에서 살기 좋은 작은 도시에 포르투갈 포르투, 벨기에 루벤, 캐나다 빅토리아, 일본 이토시마, 스위스 루체른이 선정되었다. 이 도시들의 특색은 매력이 넘치는 중소도시이다.
도시의 창조성을 높이고 창의적 인재를 유입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적 포용력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중소도시의 발전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필자는 도시계획 전공자로서 오랜 시간 '작은 도시'에 대한 가능성을 고민해 왔다. 한눈에 보일 수 있는 도시, 손에 잡힐듯한 아기자기한 도시, 손쉽게 접근이 가능한 작은 도시의 매력은 너무나도 크다. 2015년 스위스 바젤을 방문했을 때 작은 도시의 가능성을 확연히 느꼈다.
인구 10만 명의 바젤은 노바티스와 로슈 같은 글로벌 기업의 본거지지만, 높은 건물은 극히 드물고 5층 이하의 건물이 우거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위스 사람들은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통제 및 관리가 어려워진다고 하여 계획적으로 작은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루소는 작은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이 더 수월하다고 주장했듯, 작은 도시에서도 주민들이 자신의 요구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하는 도시, 매력적인 작은 도시를 추구할 수는 없을까?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의식주, 교육, 의료와 같은 요구가 해결될 수는 없을까? 필자의 학창 시절, 출세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속담이 있었다. 오히려 이젠 서울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지방으로 돌아와 작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성공이 클수록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욕망이 덜 생겨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큰 도시는 효율성과 같은 단일한 가치로 빌딩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작은 도시는 다양한 가치로 숲을 이룬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소통하자. 먼 훗날 내가 매력 넘치는 그 작은 도시에서 삶을 위로받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