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던 작가 이광재가 장편 역사소설 '왜란'(목선재)을 내놨다. 작가는 일본의 침략으로만 좁혀졌던 임진왜란이 조선과 일본, 명나라가 뒤엉킨 국제전이었다는 인식에서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 건국의 계기가 된 사르후 전투를 살피면서 조선이 관여된 동북아 국제대전의 본질을 따라간다. 작가의 이런 역사 인식은 당대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관통한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장편소설 '왜란' 표지. [사진 = 목선재 제공] 024.09.19 oks34@newspim.com |
소설은 함평 이씨 가문의 이유(李瑜)를 중심으로 임진년에 일어난 왜란을 다룬다. 고조부가 계유정란을 계기로 낙향한 이래 함평 이씨 가문에게 있어 권력은 환멸의 대상이었다. 조부가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은거한 일이며 양부 억영이 사마시에 합격하고도 잠적한 일이 모두 증거였다. 이유를 비롯해 형제들이 출사의 뜻을 접고 향촌에 박힌 연유도 그런 가풍 때문이었다.
이유의 부인 부안 김씨가 시집올 때 데려온 몸종이 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이 거북손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데다 몸놀림이 비범해 이유는 거북손이를 늘 곁에 두었다. 거북손이가 개암사 스님 월곡에게서 일 년 남짓 검술을 배우게 된 것도 이유의 배려 덕분이었다. 거북손이는 무시할 수 없는 검술솜씨로 무사로 거듭난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전라도 쪽으로 군세를 몰아갈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유는 조운선을 마련해 쌀을 싣고 의주로 파천한 임금을 향해 떠난다. 어느 날 이유는 거북손이를 불러 노비문서를 직접 태우게 하고, 홍걸이라는 이름을 내린다. 노비가 아니라 아들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이유의 이런 행동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한 모습이었다.
마침내 이유와 의병들은 호치에서 왜군에 맞설 준비를 서두른다. 호치에서 의병들은 대부분 절멸하고, 이유와 일행은 개암사 쪽으로 피신하는데 초입에서 왜군들과 맞닥뜨린다. 그곳에서 거북손이는 부상을 당하고 이유는 옆구리가 왜병의 창에 찔려 절명한다. 이후 거북손이, 아니 이홍걸은 사르후 전투에 조선군인으로 참전한다.
그렇다면 왜 지금 다시 왜란을 말하는가. 작가의 시선은 분명하다. 3개국 이상의 전쟁이 멈추지 않았던 이 땅. 그때와 형태는 다르지만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것이 답이다. 국제전쟁에서 항상 앞장 선 것은 일본이지 않던가. 임진년, 정유년의 전쟁을 넘어 합방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 양국 관계의 역사를 통틀어 일본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존중한 적이 없었다. 반성과 사과를 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이 땅에선 친일행각의 인사들이 오히려 활개를 치고 있으니 일본은 내심 기뻐하며 그들의 야욕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래서 왜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당당하고 강건한 문체를 통해 이유 장군을 비롯한 함평 이씨들의 성품을 마주하게 된다. 무뚝뚝하게 보이면서도 노비문서를 태우게 하는 뜨거운 배려심과, 권력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기꺼이 죽음과 맞서는 시대정신도 만나게 된다. 작가가 말하듯이 전쟁이 벌어지면 비로소 백성이 나타난다는 사실. 그 절절함이 가득한 작품이다.
지은이 이광재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를 썼고,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2015년 제5회 혼불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수요일에 하자', 단편집 '늑대가 송곳니를 꽂을 때'가 있다. 값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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