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양섭 기자 = 최근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랩(Grab)'을 사용해 봤을 것이다. 그랩은 우버(Uber)와 같은 차량공유 서비스를 하는 곳이다. '택시 호출'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는 동남아 시장을 장악한 거대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간편한 앱(App) 하나로 차량 호출부터 음식 배달, 금융 서비스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랩은 이제 동남아시아인의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 앱이 됐다.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처음 설립된 그랩은 이후 동남아시아 8개국에서 활발히 운영되며 각국의 다양한 규제와 문화적 차이에 맞춰 사업을 확장해왔다. 그랩의 성공은 단순히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을 모방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버의 진출도 있었지만, 그랩은 오히려 2018년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을 인수하면서 폭풍 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그랩과 유사한 차량공유 서비스는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우버가 시도했던 차량공유 서비스가 택시업계와의 갈등으로 인해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됐고, 후발주자인 그랩이 진출할 틈도 없었다. 결국 국내 시장에는 택시 호출 서비스만이 존재하게 됐고, 그 택시 호출 시장에서도 특정 사업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독점 논란이 일고 있다.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타다'는 '타다금지법'이라는 규제에 막혀 시장에서 퇴출됐다.
타다는 초기부터 택시업계의 반발과 규제당국의 견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한국에서 플랫폼 기반의 신규 사업들이 기존 산업과의 충돌 속에서 얼마나 쉽게 좌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새로운 시도를 억제하는 규제와 기존 산업의 강력한 보호 장치가 혁신을 가로막았던 사례다.
어설픈 규제만 없었다면, 자생적으로 관련 스타트업(Startup)들이 생겨나면서 해외에서도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저력이 있는 젊은 예비 창업가들이 많은 나라라고 자부한다. 기업들은 대부분 자국을 테스트베드(Testbed)화해서 그 사업을 기반으로 해외로 확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플랫폼 기반의 스타트업들과 기존 산업의 갈등은 형태만 조금씩 다를 뿐, 앞으로도 많은 영역에서 예고돼 있다. 심판 역할은 정부와 국회다. 포퓰리즘을 조금 멀리하고, 어떤 방향이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향인지만 고민해 보면 상식적인 선에서 답이 나온다.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도전을 막는 것은 기득권의 생존만 조금 더 연장시킬 뿐, 사회 전체적으로 마이너스 효과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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