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중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몰랐던 나는 길림성(지린성) 사평에 소재한 길림사범대학 중문학과 교수님 댁에서 숙식하며 중국어 기초를 배우기로 했다. 당시 논어, 맹자집주, 고문관지 등 주로 중국 고전 서적을 통해 중국을 알아왔기에, 사평에서 처음으로 현대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접하게 된 셈이었다.
당시 사평에서 운행하는 공공 버스에는 요금을 직접 확인하고 다음 역을 안내하는 버스 안내원이 있었고 택시는 거리와 상관없이 정액제로 5위안만 내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며, 길거리에는 애완용인지 식용인지 알 수 없는 오리에 목줄을 매어 끌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었다.
강윤아 법무법인 광장 베이징대표처 수석대표 |
교수님은 막 퇴임하여 연세가 지긋한 분이셨는데 예의범절과 절약을 강조하셨다. 가장 처음 배운 사자성어는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뜻의 루시앙쉐이수(入乡随俗)로 교수님 댁의 규칙에 따라 물 절약을 위해 3일에 한 번 샤워를 하고, 샤워한 물을 보관해서 변기 물로 사용했다.
동네 서점에 들러 루쉰(鲁迅)과 위화(余华)의 산문집 10 여권을 사서 돌아온 날에 '돈을 낭비한다'고 혼쭐이 나기도 했다. 원래 여름이면 하루에 몇 번도 샤워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기도 했기에 사평에서 경험한 중국은 휴지 1장도 아껴 썼다는 60년대의 옛날 이야기 속으로 타임 슬립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지역 간에도 수 십 년의 시간 차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수준의 경제, 문화적 특성이 존재하는 큰 나라임을 금방 알게 되었다. 길림대학에서 보낸 가을학기, 북경 칭화대학의 봄 학기, 하얼빈, 대련, 상해 등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지역마다 경제발전의 정도나 문화와 규정에서 모두 차이가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택시 정액제가 아닌 미터 요금제가 활성화되어 있었고 거대한 쇼핑몰과 고급 레스토랑의 번화가가 들어선 곳도 있으며 음식 가격에서도 이미 한국 물가를 초월한 곳도 있었다. 그렇게 중국에서 1년의 유학 생활을 하면서 지역별로 시대를 넘나드는 듯한 다양한 생활 방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인 중국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변호사가 된 나는 2018년 법무법인(유)광장의 북경 대표처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10년 전 중국 친구들과의 소통 수단이었던 페이스북은 더 이상 접속할 수 없어 옛 친구들을 찾기 어려웠다.
[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강윤아 법무법인 광장 북경대표처 수석대표가 연수중이던 2008년 겨울 길림대 남호공원에서 유학생 친구들과 함께 얼음을 지치고 있다. 2023.10.28 chk@newspim.com |
친구들과 자주 먹었던 길거리표 샤오카오(烧烤)도 더 이상 구경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10년 전에는 없었던 위챗, 디디, 알리페이, 따종디엔핑 등 중국 어플이 보편화되어 택시호출, 결제, 지역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한 생활의 편의는 더 좋아져 있었다. 기억 속 향수로 남은 추억은 뒤로하고 다시 새롭게 현재의 중국에 적응해야 했다.
업무적으로도 참 막막했다. 우리 법인은 오랜 기간 중국 유수의 로펌과 협업하고 있는 한국 로펌으로 M&A 관련 큰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2016년 사드 문제가 터진 후 잠정 중단된 상황이었다. 이렇게 한국 기업의 중국 투자 수요가 줄어드는 시점에 북경으로 파견 온 나는 업무적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었고 파견 초반에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중국인 친구들, 지인, 동료들의 많은 도움 덕분에 중국 생활에 차츰 적응할 수 있었다. 북경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교통사고로 오른발 등뼈가 골절되어 뼈가 붙을 때까지 1-2달은 꼼짝 없이 집에 있어야 했다. 깁스를 하고 혼자 집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 보니 휠체어가 있었다. 곧이어 간호원도 들어왔다.
집에서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나를 생각해 중국인 친구가 보내준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큰 감동으로 남아있다. 이후에도 며칠 간 동료들과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주었고 그 중 중국인 친구 취야오는 뼈에 좋다는 연근갈비탕(莲藕排骨汤)을 손수 요리해주기도 했다. 당시 인사를 나눈지 얼마 안 된 중국인 친구들이 가족처럼 먼저 마음을 써 주고 챙겨주는 덕분에 삭막했던 북경 생활에 정을 붙일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킹넷(恺英)의 황위(黄宇) 변호사와 Globe 로펌(高文律师事务所)의 쫭옌(庄严) 변호사는 업무로 만났지만 먼저 친구처럼 조건 없이 무한한 호의와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함께 사건을 수행하고 세미나를 하며 꾸준히 교류하다 보니 어느새 업무상 시시콜콜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찾게 되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법조계 멘토 선배들이 되었다.
차이다(柴达), 옌멍(闫孟)은 둘도 없이 좋은 친구인데 중국기업들의 한국 투자 관련 법률 자문 또는 송무 사건이 있을 때마다 나를 찾아주어 업무 파트너로서의 호흡도 맞춰갔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통해 업무 경험을 축적하고 성장할 수 있고 또다시 업무를 통해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중국에 와서 여실히 체득하게 되었다.
북경 생활 초반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비록 간단한 대화나 법률 서류 독해 정도는 가능했지만 막상 중국인들과 업무 회의를 하려니 법률 용어와 비즈니스 어휘가 난무하는 빠른 대화 속도를 따라가기란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어로 업무 메일을 작성하는 것도 매번 수많은 표현 중 무엇을 선택 할지 고민하는 바람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도 당시 곁에 있던 중국인 친구 고객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이들은 종종 중국인들만 모인 자리에 나를 초대해 주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질문을 해주며 느린 대답도 끝까지 경청해 주었다. 그러다 정상적인 속도로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이러한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다 보니 중국어 자체만이 아니라 대화 속도와 중국 비즈니스 문화에 대해서도 점차 익숙해질 수 있었다.
또한 중국 고객들은 업무 과정에서 출현하는 중문 표현의 세밀한 뉘앙스 차이까지 알려주고 중국인 동료 지인분들도 중국 법률 용어의 정확한 사용에 관해 아낌없이 조언을 해 주었다. 이렇게 그들이 사용하는 중국어 표현을 부단히 기록하고 1~2주에 한 번씩 복습하면서 점차 중국어로 회의하고 법률 서면을 작성하는 등 업무를 하는 것에도 자신감이 생길 수 있었다.
그 결과 난생 처음 중국 국제경제무역중재위원회(CIETAC)에서 중국어로 진행하는 국제중재 사건 변론에 참석하여 한국법을 설명하는 날이 오게 되었다. 그 후로도 지금까지 쉬지 않고 중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글쓴이= 강윤아 법무법인 광장 북경대표처 수석대표
2021년 법무법인(유) 광장 북경대표처 수석대표
2018년~2020년 법무법인(유) 광장 북경대표처 대표
2016년~현재 법무법인(유) 광장
2020년~현재 중국한국상회 법률자문고문
2020년~현재 중국한국상회 법률자문고문
2014년~2016년 LG전자㈜ 사내변호사
2013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2010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 학사 졸업
서울=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