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남영역 앞 횡단보도. 녹색 점등으로 바뀌었지만 음향신호기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함께 붙어있는 시설물 안내판에는 고장 신고 연락처가 적혀있었지만 이마저도 불법부착물 자국 때문에 가려졌다. 길 건너편 음향신호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시각장애인 김모(54) 씨는 "다른 보행자들의 발 소리를 듣고 겨우 건너거나 아예 못 건넌 적도 많다"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서울 용산구 남영역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녹색불에도 안내 멘트가 따로 나오지 않고 고장 신고 연락처는 부작물 자국 때문에 가려졌다. 2023.10.13 allpass@newspim.com |
뉴스핌은 오는 15일 '흰지팡이의 날'을 앞두고 이날 서울 내 음향신호기와 점자블록 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물들을 살펴봤다. 낡고 마모되거나 고장난 채 방치돼 오히려 사고 위험을 높일 만한 곳들이 다수 확인됐다.
역사 내에서도 불편함은 이어졌다. 시청역 개찰구에 설치된 카드 리더기 12개 중 한 개를 제외하곤 대부분 점자블록이 마모된 상태였다. 손으로 만졌을 때 점자와 평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평평했다. 옆에 설치된 비상게이트 카드 리더기 역시 비슷했다. 아예 점자 스티커가 없는 개찰구도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보행 및 방향 전환을 돕는 노란색 점자블록도 도로 곳곳 관리가 안 된 모습이었다. 시청역 3번 출구에서 나와 광화문광장에 다다르자 블럭이 끊긴 바닥을 볼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광장 안에 있는 계단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역 내에는 점자블록 중간에 배수구가 설치돼있어 시각장애인 지팡이가 빠질 우려가 있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서울 중구 시청역 내 비상게이트에 카드리더기 점자가 마모돼있다. 오른쪽 사진은 서울역 내 배수구로 인해 점자블록이 중간 중간 끊긴 모습. 2023.10.13 allpass@newspim.com |
홍서준 한국시각장애인협회 연구원은 "점자 블록들이 파손되거나 훼손돼도 유지 관리가 잘 안 되다보니 길에서 인지하기 힘들다"며 "설치 규정이 생기기도 전에 설치된 점자 블록들은 20여 년이 넘은 것들인데 아직도 방치돼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가 안 잡혀있는 것 같고, 민원에 의해서 그때 그때 해결하다보니 (시설 상태가) 심각해보이지 않는 이상 정상으로 간주된다"며 "문제는 정상 기준이 관리자 측에서 눈으로 볼 때 괜찮은 정도인데 시각장애인들이 다닐 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측에선 정기 순찰과 보수 공사를 통해 관리하고 있단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보도팀에서 순찰 활동을 통해 부분적으로 파손된 것들이 발견되면 즉시 보수하고 각 구청에서도 긴급 정비반이 운영되고 있다"며 "계절별, 반기별로 점검하고 있지만 도로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빈 틈이 생길 순 있다. 더 신경써서 살피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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