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1년인데…김병찬, 이석준 등 반복되는 범죄
[서울=뉴스핌] 지혜진 최아영 기자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3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 역무원이 해당 남성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는 고소 직후 한달여간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별다른 안전조치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사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남성은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스토킹처벌법은 지난해 10월 시행됐지만 김병찬(36), 이석준(26) 등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범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은 강력범죄로 번질 위험이 큰 범죄인만큼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후 9시쯤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31) 씨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된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촬영물등이용협박) 혐의로 전씨를 서울 서부경찰서에 고소한 후 신변보호 112시스템에 등록하는 등 안전조치를 받았다. 다만 잠정조치나 스마트워치 지급, 연계순찰 등의 조치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 이뤄지지 않았다.
안전조치는 한달 후 종료됐다. 경찰은 "안전조치 기간 중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가 연장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피해자가 지난 1월 27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 혐의로 전씨를 한차례 더 고소했지만, 이때도 추가 조치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전씨는 범행을 계획하고 피해자를 살해했다. 전씨는 범행 전 6호선 구산역에서 일회용 승차권으로 지하철을 타고 신당역으로 이동해 1시간10분가량 화장실 앞에서 피해자를 기다리다가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지난 14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 역무원이 전 직장 동료 남성 A씨에 의해 살해됐다. 피해자는 지난해와 올해 두차례 A씨를 스토킹 혐의로 고소했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등이용강요) 등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선고기일이 예정돼 있었다. 사진은 15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역 여자화장실 인근의 모습. 2022.09.15 hwang@newspim.com |
스토킹 범죄가 살인으로 번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 주차장에서 김병찬이 전 여자친구의 스토킹 신고 등에 앙심을 품고 신변 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35년형과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5년 명령을 선고했으며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같은해 12월에는 송파구에서 경찰 신고에 보복을 결심한 뒤 흥신소를 통해 피해자의 주소지 등 개인정보를 알아내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어머니를 이석준이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2월에는 구로구에서 신변보호 대상자인 4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현행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스토킹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감시하는 방향으로 법을 적용하고, 강력범죄로 번질 수 있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법을 보다 명확히 적용하는 지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작년 10월에 경찰에 신고했고 2월과 6월에 두 번의 고소를 또 진행했다"며 "어떻게 보면 피해자는 국가를 상대로 세 번을 살려 달라고 한 것이니 경찰이 제때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행 법은 피해자 보호라는 미명 하에 피해자를 감시하는 시스템으로 대상자를 잘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가해자를 감시 안 하고 있어 문제"라며 "감시의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돼야 한다. 해외에는 재판 전에 전자 감독을 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장윤희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변호사)도 "스토킹처벌법 제정 당시 현장의 경찰이 1차적으로 판단해 분리조치 하도록 했는데, 그 규정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애매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스토킹 범죄는 강력범죄로 번져나갈 조짐이 농후한 범죄이기 때문에 특수성을 분명히 헤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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