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위원회 "차벽 설치 외 다른 방법 검토하라"
경찰청 "코로나19 확산 방지 위한 불가피한 선택"
[서울=뉴스핌] 이학준 기자 = 경찰이 차벽 설치는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으니 차후 집회 대응에는 다른 방법을 검토하라는 경찰위원회 권고에도 한글날 집회에서 차벽 설치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이 여전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며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경찰위 권고를 무시한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13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5일 열린 제447회 경찰위 회의에서 박정훈 경찰위원장은 "개천절 집회에 대한 경찰의 광화문 광장 차벽 설치 및 불심 검문 대응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며 "향후 집회 대응 시 다른 적절한 방법을 검토해 대응하기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박 위원장 등 경찰위원 7명과 송민헌 경찰청 차장, 최관호 경찰청 기획조정관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은 지난 3일 개천절 불법집회를 막기 위해 경찰이 광화문 광장에 차벽을 설치하고 불심 검문을 실시해 논란이 불거진지 이틀 뒤였다.
박 위원장은 "지난 광복절 코로나19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개천절에 경찰관들 노고가 많았다"면서도 "방식의 적절성과 한계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법 집행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제 574주년 한글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이 시위 및 집회 등을 차단하기 위해 경찰 버스로 통제되고 있다. 2020.10.09 kilroy023@newspim.com |
그러나 3일 뒤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창룡 경찰청장은 개천절 광화문 광장 차벽 설치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한글날에도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세울 것이란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김 청장은 "국민 안전이 가장 우선시 될 때는 필요한 조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며 "불법집회, 미신고 및 금지 집회에 대해서는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 차벽 설치는 하되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국정감사 다음날인 지난 9일 광화문 일대에는 불법집회를 차단하기 위한 차벽이 세워졌다. 다만 개천절과 달리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차벽은 없었다. 경찰은 철제 펜스를 설치해 안쪽 진입만 통제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경찰위원회에서 우려를 했다는 말은 전해들었다"면서도 "나름 고민이 많았는데 운집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적절한 수단이 마땅치가 않았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다수가 모이는 것 자체를 못하도록 해야 시민들이 안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차벽 자체가 위헌은 아니다"며 "인근 상인이나 일반 차량은 정상적으로 통행이 가능했고, 도보로 이동하는 시민들 통행도 최대한 확보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법익 균형성이 충족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들 불편을 최대한 고려해서 시민 안전 확보라는 전제 하에 개천절에 비해서는 훨씬 최소화했다"며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차벽은 치지 않고 댓수도 많이 줄였다.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경찰위 권고에도 경찰이 차벽 설치를 강행하면서 경찰위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위는 인사와 예산 등 경찰 행정에 관한 주요 정책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그러나 자문위원회로 분류돼 있어 경찰에 대한 견제·감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형식적 기구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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