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경제가 침몰하고 인간 삶이 통제되는 대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바이러스 외에도 인류를 위협하는 악재는 많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지구는 뜨거워져 육지가 바다에 잠기거나 사막화돼 생물체가 살 수 없는 공간이 될 것이다. 순식간에 광범위한 지역을 초토화하는 태풍과 지진의 위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들 현상이 초래할 재앙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에 재앙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대처방안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플라스틱은 가소성이 있어 가열하면 물러져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고분자 유기 화합물로, 합성수지라고도 한다. 이처럼 일정한 온도를 가하면 물렁물렁해지는 특성을 지녀 플라스틱을 틀로 누르면 어떠한 모양이든지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쇠처럼 녹슬지도 않고 썩지 않으며 가볍고 튼튼할 뿐 아니라 전기가 통하지 않고 색이나 무늬도 자유자재로 넣을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물건이든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천사의 능력을 지닌 플라스틱은 20세기에 나타난 기적의 소재로 불리면서 인간의 일상과 일생을 점령했다.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재가 쓰이지 않은 제품은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서 현대를 '플라스틱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날이 갈수록 지구를 멍들게 하는 골칫거리로 인식되고 있다. 사용량이 방대한 데다 열에 약하고 썩지 않아 쓰레기 처리문제와 함께 환경호르몬 유출 등 여러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1950년대 100만t이던 전 세계 플라스틱 제품 제조량은 1990년대 들어 1억t을 넘어섰다. 2000년대 들어서는 2억t을 넘겼고 현재는 연간 약 3억t에 달한다. 이는 77억 세계 인구가 매년 일인당 40㎏의 플라스틱을 쓰고 버린다는 계산이다. 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중 79%는 매립되거나 자연 속에 버려지고, 12%는 소각되며 나머지 9% 정도만이 재활용된다는 것이 2017년 관련 보고서의 내용이다.
플라스틱 오염은 해양에서 특히 심각하다.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양에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의 광경이 펼쳐져 있다. 7만9000t에 달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부유하고 있는데 그 면적이 텍사스의 두 배에 달한다. 이들 플라스틱 조각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바다 동물들에게 치명적 위험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인줄 알고 삼킨 어류가 우리의 식탁에 오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여기에 환경호르몬을 배출해 인류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은 일반적으로 55~70도로 가열하면 성분이 변형돼 플라스틱 성분을 부드럽게 만드는 가소제와 살균제가 새어 나오는데, 이는 환경호르몬의 일종이다. 환경호르몬의 특성은 생물체에서 정상적으로 생성·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산업활동을 통해 생성·방출된 화학물질이라는 점이다. 생물체 내에 들어가 마치 호르몬처럼 작용해 체내 내분비계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거나 혼란시킨다.
최근에는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 문제가 더 큰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상 수거가 어려운 크기로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점령하며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은 5㎜ 이하로 아주 작아진 상태의 플라스틱을 말한다. 이를 분류하자면 처음부터 아주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진 1차 미세플라스틱과 버려진 후 아주 작은 알갱이로 부서진 2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나눌 수 있다. 더 잘게 부서지면 나노 단위 이하까지 쪼개진다. 작아지더라도 가지고 있던 특성은 그대로다. 가볍고 잘 부서지지만 잘 사라지지는 않으며, 물에 녹지도 쉽게 가라앉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를 분리해서 처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세플라스틱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생수와 지하수, 소금, 어패류 등 마시고 먹는 음식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식용 소금의 90%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제는 대기에서도 검출돼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어제 마신 생수에도, 지금 쓰는 화장품에도, 내일 숨 쉴 공기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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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과 미세플라스틱은 특히 해양에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코에 빨대가 찔려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이, 죽은 고래 위 속에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 찬 모습이 영상에 잡혀 우리 모두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해양에서 발견된 이들 플라스틱은 먹이사슬 경로를 통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와 건강을 해치게 된다. 쓰레기가 된 플라스틱은 바다로 흘러들어가 쌓이고 또 그 과정에서도 계속 작아진다. 바다에서는 작아진 미세 플라스틱은 먹이로 착각돼 때로는 플랑크톤이, 때로는 물고기가 삼킨다. 그 후 다시 상위 포식자가 먹게 된다. 이러한 먹이사슬이 쌓이게 되면 결국 우리의 밥상에도 오르게 되는 것이다.
미세플라스틱이 건강에 위협을 주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첫째, 플라스틱이 미세플라스틱으로 부서지는 과정에서 뾰족하거나 예리한 형태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인체에 물리적 자극을 줘 독성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는 미세플라스틱 자체가 물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 한 몫 한다.
둘째, 환경호르몬이다.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그 용도에 따라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이 첨가되는데 대부분이 환경호르몬이다. 환경호르몬은 생식계통 등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세플라스틱 역시 플라스틱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환경호르몬을 배출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미세플라스틱이 다양한 오염물질을 옮길 수 있다. 플라스틱은 구조상 다양한 물질이 쉽게 달라붙을 수 있는데 이때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등을 함께 전달해 생물학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인류는 플라스틱이 성형이 쉽고 내구성이 좋다는 장점을 지녀 그간 무분별하게 그 활용도를 넓혀 왔다. 그러나 이제 그 플라스틱이 자연 분해되지 않는 내구성을 통해 엄청난 쓰레기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인체에 유해한 환경호르몬과 오염물질을 분출함으로써 우리 인간을 역으로 공격해 오고 있다.
플라스틱 외에도 인류가 만들어낸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부메랑이 돼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화학공업의 발달로 인류는 다양한 인공물질들을 합성해 사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합성 당시 의도하지 않았던 다른 성능이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내분비계 교란 작용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DDT를 비롯해 비스페놀과 다이옥신, 스티렌 등은 체내에서 호르몬과 비슷한 작용을 해 신체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물질들을 상당량 지니고 있다. 호르몬 시스템의 교란은 면역계를 교란시키고 암의 발생을 높일 뿐 아니라, 생식과 발육에 악영향을 미쳐 불임과 기형 개체의 탄생을 유도하고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낸 생성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철환 mofelee@hanmail.net
▶이철환은 재정경제부 국고국장과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등을 지냈다.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암호화폐의 경제학', '인공지능과 미래경제', '을의 눈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