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와해 사건, 2심서도 '유죄'…이상훈은 증거능력 없어 무죄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그룹의 '무노조 경영'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노동조합 수립 와해 전략을 펼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합의3부(배준현 표현덕 김규동 부장판사)는 10일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 전현직 삼성 임직원과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전직 정보경찰 등 32명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을 열고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이 전 의장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증거가 위법적으로 수집됐다고 판단했다.
당초 이 사건은 이명박(79) 전 대통령의 다스(DAS) 횡령 사건을 수사하던 중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 2013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외부에 폭로된 후 수사에 착수했으나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수사가 종결됐다. 그러다 삼성의 다스 미국 소송비 대납 혐의 수사를 위해 삼성전자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노조 와해 전략 문건이 든 하드 디스크를 발견하면서 수사가 다시 급물살을 탔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활동 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17 mironj19@newspim.com |
피고인 측은 1심부터 이같은 검찰의 증거수집이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장소에 대해서만 집행해야 하는데, 그 외 장소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압수수색 당시 하드디스크를 소지하고 있던 직원에게 영장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절차상 중대한 하자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의장 측의 위법수집증거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하지만 결코 공모 가담이 없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던 이 전 의장은 이날 석방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의장을 제외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과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최평석 전 삼성전자서비스 전무는 유죄를 선고 받았지만 일부 무죄를 받아 형이 다소 감경됐다.
목장균 전 삼성전자 노무담당 전무와 전직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모 씨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월이 선고됐다.
삼성 서초사옥 /김학선 기자 yooksa@ |
앞서 이들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노조 설립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2013년 자회사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이 전 의장 등이 노조와해 전략인 일명 '그린화 작업'을 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에서 수립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협력업체 폐업 및 조합원 재취업 방해 △'삼성관리'를 빙자한 개별 면담 등으로 노조탈퇴 종용 △조합활동을 이유로 한 임금삭감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공동으로 단체교섭 지연·불응 △채무 등 재산관계, 임신 여부 등 조합원 사찰 등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대부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이 전 의장 등 삼성 임원들을 실형 구속했다.
1심은 "수많은 문건이 제출됐는데, 미래전략실에서부터 하달돼 각 계열사 및 자회사로 배포된 각 연도별 노사 전략과 복수노조 대응 태세 점검, 모의 훈련, 동향 보고, 노조설립 시나리오 등 노조를 와해시키고 설립을 방해하겠다는 문건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굳이 문건을 해석할 필요도 없이 문건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범행 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지난 6월 열린 결심공판에서 "1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 과거 노조에 대한 시각이나 인식이 국민 눈높이나 사회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을 시인하고 앞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관계를 정립하겠다고 밝혔다"며 "연초에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준법 경영에 힘쓰고 있다. 이런 제반사정을 살펴 모든 이들에게 최대한 선처를 부탁드린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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