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패널·반도체 등 탈일본 가속화…日기업 '타격'
규제 밖 업계도 탈일본 언급... "문 정부 눈치 보기"
[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규제 강화 이후 한국의 탈 일본기업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일본 기업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있다고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현재 한국의 디스플레이·반도체 업체들은 생산에 필요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조기에 국산화하긴 어렵다고 판단해, 한국에서 조달 가능한 저순도품으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수율 하락을 우려해 일본의 고품질 제품을 사용해왔지만 수출관리 규제 강화로 시작된 한국의 조달처 전환은 일본 기업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G20 정상 환영 및 기념촬영 식순 중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신문은 세계 최대 액정생산기업인 LG디스플레이가 지난해 11월부터 액정패널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는 불화수소의 조달처를 바꿨다는 점을 강조했다.
LG디스플레이는 그동안 일본 기업인 스텔라케미파가 생산한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한국업체 솔브레인이 100배 희석한 제품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관리 규제 강화로 해당 제품의 수입이 중단될 리스크를 감안해, LG측은 솔브레인이 자체 생성·가공한 저순도 불화수소를 액정패널 생산라인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는 "LG디스플레이의 한 간부는 충분히 희석하기 위해 일본에서 정미 생성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은 일본 기업들의 한국의 탈일본 움직임에 따라 실적이 악화되는 구체적인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텔라케미파가 지난 11일 발표한 2019회계연도 결산에 따르면 순이익은 전분기 대비 18% 감소했다. 스텔라케미파는 "한국 대상 수출관리 운용 재검토 등을 배경으로 반도체 액정 전용 불화수소의 수출 판매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주력상품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출하량은 전분기 대비 30% 정도 떨어졌다.
해당 분야에서 스텔라케미파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세계적 대기업 모리타(森田)화학공업은 지난 1월 상순에 수출을 재개했지만, 한국 판매는 수출관리 규제 강화 직전에 비해 30% 정도 감소했다. 한국사로 조달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 모리타 화학공업 간부는 "한 번 빼앗긴 만큼 되돌리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기업와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의 첨단소재를 사용해왔던 건 고품질·저가인데다 안정적인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패널이나 반도체 제조는 100개가 넘는 섬세한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부 소재를 변경하면 불량품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수율 저하를 염려해 고품질 소재를 사용해왔던 '관습'을 흔든 건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규제 강화였다.
[베이징 신화사 = 뉴스핌 특약] 배상희 기자 = 삼성전자 수원 공장에서 작업중인 직원들의 모습. 2020.02.27 |
액정패널보다 대량의 불화수소를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에서도 조달처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 삼성전자 간부는 "경제 합리성을 생각하면 일본에서 조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반도체의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공정 일부를 국내 조달이 가능한 저순도 불화수소로 전환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설령 일본의 수출규제가 2019년 7월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한 번 대체된 재료를 다시 일본산으로 바꾸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신문은 한국 기업들이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살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괜한 비판을 자초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우리나라 소대기업이 발전해 언젠가 '땡큐 아베'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며 탈(脫)일본을 위해 국내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정부는 해외 기업의 공장 유지도 지원하고 있다. 종합화학업체인 미국 튜폰은 수출관리 규제 강화 대상 중 하나인 EUV용 레지스트 공장을 한국에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공단의 땅을 마련하고 법인세도 감면해 투자를 도왔다.
영업 현장에서도 수출규제 강화조치의 여파가 나오고 있다. 한 일본계 전자부품 제조사의 영업 담당자는 한국 기업으로부터 "조달처로서 일본 기업의 우선순위가 내려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정부의 탈일본이 할인의 빌미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일본계 소재기업 담당자는 "한국 정부의 과잉반응은 언제나 있던 일"이라면서 "일본 정부는 어른스러운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건가"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부적절한 사안이 있어 신뢰관계가 훼손돼 수출관리를 재검토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경제보복'으로 받아들이는 한국 측은 계속해서 반발하고 있다. 한일정부의 적대감이 일본 기업 현장의 근심이 되고 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