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적인 질병 종식은 무척 오래 걸리는 과정
바이러스 공포 극복하고 살아가는 법 배워야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코로나19(COVID-19)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이 언제 종식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질병 자체의 의료적인 종식 보다는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에 익숙해지는 이른바 '사회적' 종식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 거리가 행인 없이 조용하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2020.03.29 |
10일 자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팬데믹의 종식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신규 발병과 사망률이 급격히 줄어드는 의료적인 종식(medical ending)이고 다른 하나는 질병에 대한 공포가 사그라들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익숙해지는 '사회적 종식(social ending)'이다.
이와 관련해 미 존스홉킨스대학의 의학역사학자 제러미 그린은 "사람들이 '대체 유행병은 언제 끝날까'라고 물을 때는 후자를 뜻한다"고 말했다. 즉 팬데믹의 종식은 질병 자체가 사라질 때가 아니라 사람들이 공포에서 벗어나 질병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울 때라는 설명이다.
그린 박사는 "우리가 경제활동 재개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듯이, 소위 팬데믹 종식에 대한 많은 의문은 의료와 공중보건 데이터가 아니라 사회정치적 과정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 대유행병 종식, 사회정치적 과정이 결정
예컨데 지난 2000년 동안 수차례 발병해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선페스트(Bubonic plague), 이른바 '흑사병'은 그 때마다 흐름을 바꿔놓았는데, 매번 반복될 때마다 공포가 증폭했다.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란 박테리아가 원인인 이 질병은 쥐벼룩을 통해 옮기는데, 나중에는 사람 간 전염이 되기 때문에 쥐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근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전염병이 왜 소멸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 추운 날씨란 얘기도 있고 매개체인 쥐의 변화나 박테리아 자체의 진화 때문이란 의견도 있지만, 페스트 혹은 흑사병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항생제로 성공적인 치료도 가능하지만 페스트가 발병했다는 사례가 나올 때마다 공포는 되살아난다.
한 가지 의학적으로 종식된 전염병이 있는데, 바로 천연두다. 하지만 이 경우는 평생 보호가 되는 백신이 존재한다. 이 질병의 바이러스는 동물 숙주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평생 항체를 가지면 소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질병의 증상이 특징적이라 효과적으로 격리하고 추적할 수 있다.
독감의 경우는 주목할만 하다.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전세계에서 창궐한 이른바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최소 5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퍼졌던 질병으로, 전쟁이 끝나자 이 유행병도 잊혀져 갔다. 100만명을 숨지게 한 1968년 '홍콩 독감'도 계절성 독감으로 남게 되면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만큼의 공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역사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도 의학적으로 끝나기 전에 사회적으로 종료될 것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 이동제한과 봉쇄령 등에 지친 사람들이 백신·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 대유행 종식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오미 로저스 예일대 역사학자는 "지치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회적 심리 문제"를 거론하며 "사람들은 '그만하면 충분하다'며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할 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 진행형인데도 불구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겠다는 움직임은 이미 곳곳서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들은 코로나19 봉쇄 조치를 완화했고 미용실과 헬스장 등 여러 상점은 영업을 재개했다. 비록 공중 보건 전문가들은 이러한 완화 조치가 이르다고 지적했지만 코로나19 봉쇄령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까 우려한 많은 사람들은 "이만하면 됐다"(enough)는 반응이다.
로저스 박사는 "공중 보건 관리들은 의학적인 결말을 보고 있지만 일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사회적 결말"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사회적 종식도 언제쯤 이뤄질지 미지수라며, 다만 '길고 어려운 과정일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