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외환시장에서 지금까지 정설로 여겨졌던 '리스크 오프(위험 회피) 엔고' 이론이 무너지고 있다.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미국과 일본의 금리 스프레드(격차)가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엔화 환율은 엔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추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1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 이유는 달러화에 대한 강한 수요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엔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 1% 내 금리차에도 엔저 진행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한 공포감으로 뉴욕증시의 대표 지수인 다우지수는 최근 한 달 새 지난달 12일 최고점(2만9551.42) 대비 30% 넘게 하락했다. 금과 원유 가격도 일제히 하락했다.
이러한 리스크 오프 국면에서는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 매수에 나서면서 엔화 강세·달러화 약세가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 2008년 리먼 쇼크 당시에도 1개월 남짓 동안 1달러=105엔대에서 90엔대 부근까지 급격하게 엔고가 진행된 바 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미일 간 금리도 크게 축소됐다. 금융시장에는 달러를 조달해 금리가 높은 미 국채 등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 많다. 미국의 금리가 떨어지면 투자 매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달러 매수세가 후퇴하면서 엔화 강세를 초래하게 된다.
미일 간 금리 격차는 연초 2% 가까이에 달했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거푸 금리를 내리면서 1% 내로 좁혀지며 과거 전례 없는 수준까지 축소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화 환율은 달러당 108엔대로 한 달 전 110엔 부근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서 추이하고 있다. 3월 초 한때 101엔까지 엔고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그 후 이내 엔저로 회귀했다.
최근 1년간 달러/엔 환율 추이 [자료=QUICK] |
◆ 강한 '달러' 수요가 엔고 막아
니혼게이자이는 엔고가 진행되지 않는 최대 이유는 달러에 대한 강한 수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으로 수중에 달러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나아가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주가 폭락에 따른 투자펀드의 해약·환금 등에 대비해 달러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해 달러화의 명목실효환율은 17일 시점에서 128.8을 기록하며 최근 한 달 간 4% 넘게 올랐다. JP모간체이스은행의 사사키 도오루(佐々木融) 매니징 디렉터는 "리먼 쇼크 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금융시장에서는 금리가 싼 엔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비싼 통화에 투자해 수익을 챙기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이 혼란해지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엔고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리먼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금융완화에 나서며 엔화 이외에도 유로화를 비롯한 저금리 통화가 늘어나고 있다. 사사키 디렉터는 "엔 캐리 트레이드는 시들해졌으며, 회복 움직임도 한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단, 이대로 엔저가 정착될 것이란 섣부른 예상도 금물이다. 미즈호은행의 가라카마 다이스케(唐鎌大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비상시로 달러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코로나19 종식이 가시화되면 금리 격차가 의식되면서 엔화는 100엔대 초반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시장 전문가도 "101엔 정도까지는 엔고가 진행될 여지가 있다"고 예상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한 트레이더가 경악하는 표정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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