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부터 학고재서 28년만에 개인전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노동자와 여성문제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노원희(71) 작가가 8일부터 학고제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오는 12월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학고재가 1991년 이후 두 번째로 여는 노원희의 대규모 개인전이다. 학고재 전관에서 총 36점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제작연도는 1995~2019년이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얇은 땅 위에 On Thin Land, 2019,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채 Acrylic, oil on canvas, 162.1x260.6cm (162.1x130.3cm x2)2019.11.07 [사진=학고재] 89hklee@newspim.com |
본관에서는 최근작을 집중 조명한다. '얇은 땅 위에'(2019)의 화면에는 현대중공업 노조 시위자들의 엎드린 모습이 드러난다. '광장의 사람들'(2011)은 광화문 촛불집회를 소재로 했다. 세월호 희생자, 삼성반도체 산재 희생자, 민주언론시민연합 후원회원과 주변 인물 등 작가가 보고 들은 모든 이름들을 배경에 빼곡히 적었다. 전시 기간 중 방문하는 관람객의 이름도 기록될 예정이다.
노 작가는 주로 뉴스를 통해 세상의 이야기를 접하고 그 중에서도 정치와 노동자 이슈에 관심을 가져왔다. 삼성반도체 산재 희생자, 세월호 사건 등 무거운 사건을 마주하면 붓을 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념비 자리2'에 그린 검은 탑은 지난 2012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의 송전탑 고공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으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기 고(故) 김용균 씨의 얼굴도 보인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학고재에서 노원희 작가 2019.11.07 89hklee@newspim.com |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의 제목이자 개인전 타이틀인 '얇은 땅 위에'는 노 작가가 바라본 우리 현실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벽을 중심으로 좌측 캔버스 하단에는 무릎 꿇고 엎드린 인물들이 펼쳐진다. 거대한 벽 너머에는 또 다른 권력층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오른 편에는 얇은 땅 아래 넓게 파인 '샘' 같은 곳에서 소리를 외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노 작가는 "블랙홀인지 뭔지 모를 이곳에서 뜨거운 질문을 해보고 싶다"고 설명했다.
'무기를 들고'(2018) 역시 흥미롭다. 실제로 살림까지 도맡아하는 노원희 작가는 사회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여성의 이야기를 붓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살림살이가 쌓인 뒷 배경으로 요리용 팬을 번쩍 들고 무언가에 '항의'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따뜻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팬이 '무기'가 돼버리는 현장이다. 노원희 작가는 "미투 운동이 일어난 지난해,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저도 돌이켜보면 성추행, 여성 작가로서 불평등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며 "여성의 문제는 항상 유보됐다. 저는 '살림하는 여자들'이 주체가 된 모습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95 자화상 1 95 Self Portrait 1, 1995, 캔버스에 콜라주, 아크릴릭 Collage, Acrylic on Canvas, 65.5x91cm [사진=학고재] 2019.11.07 89hklee@newspim.com |
신관에서는 구작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자화상을 잘 남기지 않는 노원희의 '95 자화상'(1995)을 만나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 그림에는 무덤덤한 얼굴의 노원희와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차가운 빙과를 핥아먹는 반전(?)의 얼굴을 한 노원희가 대칭돼 눈길을 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작업은 주로 자신의 가족, 주변인의 삶을 소재로 한다. 개인의 삶을 중심으로 해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바라보고자 했다. '돼지국밥 30년'(2006), '오래된 살림살이'(2001) 등에서 노원희 작업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노원희는 일상적인 사물과 주변 풍경에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투영한다. 그렇게 평범한 삶에 무게와 의미를 부여한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