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총재 경고 큰 의미, 단순한 우려 넘어 현실화될 수 있어"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위해 관련분야 대학 정원 과감하게 늘려야"
"현 정부, 노무현 정부에 비해 소통 소홀...건전한 비판 적극 수용해야"
[서울=뉴스핌] 어윤대 고려대 명예교수는 “라가르드 IMF 총재의 경고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순한 우려를 넘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영국의 노딜 브랙시트, 무역분쟁, 통화긴축, 중국경제 둔화 등이 글로벌 경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어 교수는 또 “AI, 100세 시대 등을 맞아 빅데이터, 의료,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미래먹거리로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런 분야에 대해선 대학 정원을 과감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교수는 20일 뉴스핌과의 특별 대담을 통해 소득주도성장 등 J노믹스 경제정책, 글로벌 경제 상황,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위기와 그 해법, 신남방 러시 등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어 교수와의 인터뷰는 여의도 JB금융지주회사 고문 사무실에서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인터뷰. 2019.02.20 mironj19@newspim.com |
다음은 어 교수와의 일문일답.
◆ "소득주도성장, 취지는 좋으나 '속도조절' 필요"
- 최근 한국경영학회에서 상남경영학자상을 수상했다. 감회가 어떠신지.
▲대학교수를 은퇴하고 명예교수가 된 지 7년이 지났는데 큰 상을 받게 돼 송구스럽다. 그간 경영자로서 여러차례 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받은 상에 대한 감회는 남다르다. 32년 동안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친 교수 입장에서 경영학자상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 J노믹스로 불리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포용성장으로 구성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전반적으로 평가해달라.
▲우선 소득주도성장은 취지는 좋으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지난 40년간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경제는 양적성장을 이뤄낸 반면 질적인 성장을 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너무 급하게 추진된 경향이 있다. 글로벌경기가 불확실하고 국내경기마저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경제 정책의 중요한 변화가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현재 경제 상황은 엄중하다. 현재 기업가정신 지표가 지난 20년 동안 가장 저점에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마저 일하고 싶은 의지가 꺾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의 영향으로 제품 생산에 대한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가 최근 공시지가를 10~15%씩 올리고 퇴직자를 중심으로 의료보험비를 크게 올렸는데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누적되면 6개월 뒤에는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반발이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어 우려된다.
-이런 사태의 원인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가.
▲소통에 있다고 본다. 우선 지금 정부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는 열었는데 이야기를 지나가는 말로만 듣는 것 같다. 건전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정책소통에 대한 자세다. 노 전 대통령은 본인 철학과 다른 고언(苦言)도 잘 받아들인 반면, 지금 정부는 귀는 열어뒀는지 모르지만 이야기를 흘려 듣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당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3년 동안 했다. 당시 회의는 철저히 자유토론으로 진행됐는데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왔다. 이를 두고 정부와 많이 충돌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책에 많은 부분이 반영됐다.
예컨대 한미FTA 체결을 두고 노 전 대통령에게 “본인 철학과 다른데 어떻게 체결하기로 결정했냐”고 물었더니 "경제학자들이 모두 다 옳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내가 안 따를 수 있느냐"고 답했다. 건전한 비판이 정책에 반영된 결과다. 이에 반해 현 정권은 정치적 지지기반을 너무 신경쓰는 탓에 소통에 다소 소홀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난해 말과 지난달에 이어, 그리고 최근까지 잇따라 글로벌 ‘경제 폭풍’(위기)에 대해 더욱 강도높게 경고하고 있다. 라가르드 총재는 글로벌 경제상황에 미중 무역분쟁, 금융긴축, 노딜 브랙시트, 중국의 경제둔화 등 ‘4개의 먹구름’이 있어 번개가 한번 치면 ‘경제 폭풍’으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라가르드 총재의 경고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단순한 우려를 넘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IMF 총재의 입장에서는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EU 탈퇴)의 파장을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브렉시트의 파장은 EU 전체 27개 국가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다. 이밖에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미중간 무역분쟁, 통화긴축, 중국경제 둔화 우려 등도 글로벌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 중 중국경제 둔화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40%에 달하는 만큼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는 우리 경제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또 미중 무역분쟁도 우려스러운 것 중 하나다. 분쟁이 확산하거나 장기화될 수 경우 중간재 교역이 많은 국내 수출의 특성상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의 경우 일반적인 시장논리가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의 힘이 시장을 좌지우지해 경제 위기가 현실화될 우려는 그만큼 적을 수 있다. 예컨대 15년 전 나는 중국 북경대의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중국은행들의 부실대출 비율이 10%를 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의 은행들이 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던 바 있다. 그런데 5년이 지나자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이 됐다. 중국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전부 부실 국책은행의 증자로 사용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구조인데 해당 조치로 부실채권이 많았던 중국 중앙은행, 공상은행 등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으로 자리잡았다.
◆ "대학교육 강화,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 필수적"
-그렇다면 국내 경제정책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을 위한 원천 투자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장의 근원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비축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개발(R&D) 과 교육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핵심은 대학에 있다. 대학이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국가는 장기 성장을 이뤄낼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대학의 개수와 정원 많다는 이유로 투자를 거두고 있다. 중국의 유명대학에 대한 1년 투자액이 한국 전체 대학의 1년 투자액과 같은 상황이다. 정원이 많아서 문제가 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대학이 한국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규제도 문제다. 4차산업시대 핵심산업 분야인 빅데이터는 금융, 의료, 유통 분야와 접목하면 큰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 추세와 다르게 한국은 유독 소비자 보호라는 원칙을 강조한 탓에 발전이 더디다. 때문에 소비자 보호와 산업 발전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소한 사건이 발생한다고 모든 것을 폐쇄시키는 규제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인터뷰. 2019.02.20 mironj19@newspim.com |
-대학 교육 강화를 주장하는 이유가 있는가.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의 보고다. 이를 통해 키워진 인재는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 될 것이다. 예전에는 대학 진학률(80% 이상)이 너무 높아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학 교육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머, 의사, 간호사 등 고부가가치 직종을 많이 양성해 중동이나 동남아 등으로 인재를 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학의 어떤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하는가.
▲AI, 100세 시대 등을 맞아 빅데이터, 의료, 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미래먹거리로 집중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야에 대해선 대학 정원을 과감하게 늘릴 필요가 있다. 현재 경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학 정원의 구조 문제를 해결해 새로운 산업을 키워낼 수 있는 분야의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예컨대 의과대학의 정원을 3배 정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가 변호사나 공인회계사를 대폭 늘려서 해당 시장을 활성화시킨 것처럼 의사도 대폭 늘려서 의료산업(의료시술, 바이오, 액품)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 "금융권의 신남방 러시, 국내 금융사끼리 경쟁 격화…비용부담 우려돼"
-금융 쪽에 오래 동안 몸담으셨다. 최근 금융권의 신남방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내 시장이 포화된 상황과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 막대한 인구를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진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유의할 점도 있다. 예컨대 현지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 적정 비용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치루는 점이 우려스럽다. 국내 금융사들이 대거 진출하며 현지 금융사 매물이 시장가격보다 2~4배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마치 1980년대 우리나라 종합상사가 해외 원자재 확보를 위해 2~3배 가격을 주고 현지 광산을 샀던 것과 같은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나가야 하는 것도 맞고 전망도 좋지만 인수합병을 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담= 황남준 논설실장 wnj777@newspim, 정리= 김진호 기자 rplkim@newspim.com
◆ 어윤대 고대 명예교수는
고려대 총장(2003~2006)을 지내면서 시대에 앞서 ‘민족 고대’의 글로벌화를 추진했고, 3500억원의 발전기금을 유치하는 등 'CEO형 총장'으로 대학의 혁신과 변화,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지난 정권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2003~2005), FTA 국내대책위원회 민간위원장(2007), 국가브랜드위원장(2008~2010) 등 관직을 지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1992~1995), 한국금융학회장(1995~1996), 초대 국제금융센터 소장(1999), 한국경영학회장(2002), 하나금융그룹 사외이사 (2007), KB금융지주 회장(2010~2013) 등 금융 분야에서 오랫동안 크고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경남 진해 출신.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지내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