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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5-1) 한국전쟁 진실 밝힌 두 러시아인

기사입력 : 2019년02월15일 17:34

최종수정 : 2019년02월15일 17:34

한국전쟁 북침설 잠재운 볼코고노프 장군...남침입증 비밀문건 공개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 단언
스탈린 남친전쟁 승인-중공군 참전문건 등 극비전문 첫 공개 '충격'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한국전쟁이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는 사실은 지금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팩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동안 일부 진보적 학자 사이에서 남침을 부정하는 황당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론에 의한 북침설, 남북한 국지적 무력충돌이 확대돼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설, 나토의 군사적 압력을 극동으로 분산시키고 아시아권 공산화 촉진을 위해 스탈린이 기획했다는 설 등이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제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군 장병들이 미래전투수행체계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18.10.01. leehs@newspim.com 

◆옐친 최측근이자 군 개혁위원장 볼코고노프...소련군 선전선동총국 2인자 출신   

김일성 주도의 인민해방전쟁(남침)으로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에는 두 명의 저명한 러시아 전문가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 볼코고노프 장군과 코로트코프 박사가 바로 그들이다. 필자가 공들여 만났던 이들은 관련 비밀문건을 공개하며 용감하게 진실을 털어놓음으로써 북한의 ‘남침’ 사실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옐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남침을 입증하는 관련 비밀문건을 제공했다.

먼저 볼코고노프 장군을 말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소련 개입 여부를 집중 취재하던 중 92년 봄 드미트리 볼코고노프 장군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현역 육군 상장(우리의 대장)인 볼코고노프는, 러시아 연방 인민대의원(국회의원) 겸 국가문서관리위원장, 옐친 대통령 군사보좌관과 국가안보위원회 위원, 과학아카데미 정회원이란 다채로운 직책을 가진 거물이었다.

옐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소련 해체 직후 러시아 연방정부의 첫 국방장관 직을 제의받았으나 야전 지휘관 출신이 아니라는 합리적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고 한다. 그 대신 대통령 군사보좌관과 군 개혁위원장을 맡아 안보와 군개혁문제에 관해 대통령과 수시 협의하는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련군 선전선동총국(중국군 총정치부와 유사한 기구) 쪽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부총국장까지 올랐다. 자연스럽게 비밀문건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련의 왜곡 투성이 역사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레닌과 스탈린의 조작된 신화를 무너뜨린 탁월한 연구는 서방에서도 알아주는 역사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때문에 군부를 비롯한 정통 보수파로부터 배척을 받고 국방부 산하 군사연구소 소장으로 좌천돼 있다가 옐친의 부름을 받게 된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6.25전쟁 제68주년 중앙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8.06.25 kilroy023@newspim.com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 단언 

그의 화려한 프로필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국가문서관리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주목을 끌었다. 공산체제를 극도로 싫어한 옐친 대통령은 소련 시절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비밀문건 등을 전면 재검토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가문서관리위원회를 신설했다.

위원장에는 스탈린 독재를 비롯해 기존의 공산폭정에 관한 비판적인 저서를 냈다가 축출된 볼코고노프를 상장(우리의 대장)으로 올려 임명했다. 그에게는 KGB, 국방부, 외무부 등 모든 정부기관에 소장된 어떤 비밀문건에도 접근할 수 있는 전대미문의 특권이 부여되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체의 기록과 사건. 사고를 아무 제한없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를 만난 건 순전히 행운이었다. 어느 한국인 회사 사무실에서 친교를 맺은 러시아인(예비역 소령)이 볼코고노프 장군을 모신 적이 있고 가끔 연락도 하는 사이라며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사실 특파원 부임 전부터 볼코고노프란 인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어느 외국 기자에게 한국전쟁과 관련해 북침(소련에서는 정설로 돼 있었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며 관련 자료를 검토, 정리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첫 만남에서 연합뉴스의 매체 성격을 설명하고 필자에게 전해주는 내용은 가감없이 한국민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장군은 서울에서는 한국전쟁기원에 관한 내막이 궁금할 것이라며 차근차근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한국전쟁은 김일성-스탈린-마오쩌둥 3인이 공모한 ‘해방전쟁’이었다고 단언했다.

‘KBS 다큐 1’ 6.25 한국전쟁…대한민국 최초 전투함 ‘백두산함’, 긴박했던 해상전투 <사진=‘KBS 다큐 1’ 홈페이지>

◆스탈린이 김일성에 보낸 남침전쟁 승인-중공군 참전결정 극비전문 첫 공개 

처음 공개하는 것이라며 남침전쟁임을 결정적으로 입증하는 3인간 주고받은 극비전문 일부를 보여줬다. 스탈린이 ‘핀시’라는 기이한 암호명으로 김일성에게 보낸 남침전쟁 승인과 중공군 참전결정에 관한 비밀전문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묻혀진 과거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자신의 의무이자 임무라면서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엄격한 장군이라기 보다 학자풍인 그는 앞으로 만남이 계속되면 추가적인 미공개 자료들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필자의 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얼마든지 인용해도 좋다고 할 정도로 거리낌이 없었다.

비밀문건을 토대로 한 기사는 당연히 국내언론에 연합 크레디트를 달아 대서특필됐다. 대어를 낚았다는 뿌듯함과 함께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첫 만남이후 귀임할 때까지 10여 차례 만났다. 그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을 비롯해 한.러 관계 보도를 심도있게 이어갈 수 있었다. 만남이 계속될수록 이심전심으로 정서적 유대감이 커지고 상호신뢰가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92년 8월의 만남에서 볼코고노프 장군은 냉전시대 최대의 비극으로 기록된 사할린 상공 KAL기 격추사건(1983년 8월31일)과 관련해 당시 소련 지도부의 조직적 은폐과정을 폭로하는 비밀문건을 필자에게 제시하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처리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소집된 소련 공산당 정치국 확대회의 회의록이라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의 파렴치한 행태가 그대로 드러난 회의록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의록의 내용은 'KAL사건에 관한 고르바초프의 애매한 태도' 편에서 상술했으므로 생략한다.

 
[평택=뉴스핌] 이형석 기자 =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미군 유해가 27일 오전 북한 갈마공항을 출발해 경기도 평택시 주한미공군 오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2018.07.27 leehs@newspim.com  

◆KAL기 격추사건 조직적 은폐 문건 제시...옐친, YS에 유감표시 관련 문건 전달 계기 

이와 관련, 필자는 옐친 대통령이 92년 11월 방한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 KAL기 피격사건과 희생자에 대해 러시아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한국인의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며칠 후 장군은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며 소련과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사과를 표명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KAL기 사건과 한국전쟁 개입에 대해 정식으로 유감을 표시하고 관련 문건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귀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장군은 장문의 문건 하나를 전해주었다. 스탈린 사망 직전 3일 간의 긴박한 상황을 비밀문건을 토대로 정리한 것인데 원래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주기로 했다가 필자에게 석별의 기념으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스탈린 공식 사망 전 3일 동안 권력층 내부에서 전개되는 치열한 암투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문건에 의하면 별장에서 최후를 맞기 직전 스탈린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끝낼 것인가였다. 스탈린은 사망 얼마 전부터 서방의 종전 압력과 중국의 참전대가로 약속한 대규모 무기공여, 군수공장 설립 및 원자탄 제조비밀 제공 등의 이행을 마오로부터 끈질기게 요구받자 전쟁을 끝내기로 작정했다는 게 장군의 설명이다.

특히 중국이 미국에 맞서 대등한 전투를 벌임으로써 마오의 국제적 위신이 높아진 데 따른 경계심도 작용했다고 한다. 사망 5일전인 1953년 2월 28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행동을 다음날 취할 계획이라고 측근들에게 말하고 이날 저녁 베리야, 불가닌, 흐루시초프, 몰로토프 등 최측근 정치국 동료들과의 만찬에서도 한국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음을 거듭 지적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94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 교민들과 인사하는 가운데 특파원단 대표 자격으로 필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스핌DB]

◆스탈린, "한국전쟁 승리가능성 없다"...최고위급 만찬서 정전 결정후 뇌졸중 쓰러져 

밤늦게까지 이어진 파티를 끝내고 다음날 새벽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비밀경찰 총수 베리야는 스탈린에 대한 응급조치를 고의적으로 지연시켰고 스탈린은 3월 5일 사망했다. 그의 별장집무실 책상 위에는 한국전쟁 정세 분석 문건과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티토 제거계획이 실패했다는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후임 지도부는 서둘러 한국전쟁을 끝내기로 하고 정전의사를 유엔대사를 통해 표명토록 조치했다.

러시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헌신적이었던 볼코고노프 장군은 94년 말 옐친 대통령의 체첸 침공 결정을 비판하면서 내침을 받게 된다. 민족분쟁 해결에 무력사용은 안된다는 게 그의 변함없는 신념이었다.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인 그는 미-러 전쟁범죄조사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95년 말 병환으로 서거한 장군에 대해 LA타임스는 “진실을 폭로하고 조작된 신화의 타파를 위해 그는 자주 (체제에 대한) 반역과 배신을 저질렀다. 그는 결코 후퇴하지 않았다”고 평했다. 그의 인물됨이 돋보인 것은 서슬이 시퍼런 공산당 시절에 소련체제와 이데올로기에 용감하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은 장군의 단호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기존의 저서 ‘스탈린’에서 한국전쟁 관련한 스탈린-김일성-모택동 간 비밀전문과 남침 직전 쉬티코프 대사의 극비 보고서등이 포함한 개정판을 한국어로 발간하기도 했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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