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 비닐하우스촌..가연성 소재·밀집된 구조로 화재 취약
겨울철 난방기구, 전열기 사용으로 화재 위험 ↑
화재 예방 조치, 주거대책 등 다각도 대안 필요
[서울=뉴스핌] 윤혜원 기자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근처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는 A(58·여)씨는 20여년의 비닐하우스촌 생활을 "불 속에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13년 전 한겨울 한밤중, 마을 어귀 비닐하우스 3개동이 송두리째 타는 것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비닐하우스는 전소됐다. 주민들 사이에서 당시 불은 가스불을 오래 켜뒀다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A씨는 그 날 이후 3개월 간 잠을 잘 못 잤다. 불기둥이 솟아오르던 장면이 꿈속에 자꾸 나왔기 때문이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A씨는 불씨 하나라도 튀면 자신의 보금자리가 사라질까 걱정하며 산다.
겨울 추위가 한창인 가운데 대표적 주거 취약 계층 중 하나인 비닐하우스 거주민들이 화재의 위험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불에 쉽게 타는 비닐하우스의 재질과 불이 쉽게 번지는 비닐하우스촌의 구조 등을 감안할 때 비닐하우스 화재 예방 조치와 주거 대책 등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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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근처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의 전경. 한 비닐하우스 앞에 연탄더미와 LPG 가스통이 놓여있다. hwyoon@newspim.com |
26일 찾은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는 성인 한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비닐하우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90가구, 150여명이 산다. 전체 주민 중 80%가 70~80대 이상 노인이다.
비닐하우스를 에워싼 검정색 차광막 안에는 합판과 비닐이 겹겹이 덧대어져 있었다. 집집마다 연탄더미가 외벽을 타고 줄지어 쌓여 있고, 연탄 옆에 배치된 LPG 가스통들은 주황색 호스를 타고 비닐하우스 내부와 연결된 상태였다.
주민들은 이러한 비닐하우스촌의 특성상 한 번의 불에 온 마을이 타버릴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비닐하우스가 불에 쉽게 타는 재료로 만들어졌고 서로 밀착해 있는 탓에 어느 한 집에서 불이 나면 이웃집으로 삽시간에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겨울에는 난로, 전기장판 등으로 추위를 이겨내는 만큼 화재에 한층 취약하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소방당국이 1가구 당 소화기 1개 이상을 지급하고 집마다 화재경보기를 설치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화재에 대한 위기감을 안고 있었다.
A씨는 걱정이 현실이 됐던 경험이 있어 더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6년 전 A씨의 집에는 연탄재 때문에 불이 난 적이 있다. 그는 “연탄을 갈다 재가 날려 석유통에 붙었는데, 순식간에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며 “수도관이 얼어 물이 안 나와 미리 받아놓은 물을 뿌려 겨우 불을 껐는데, 큰 화재로는 번지지 않았지만 정말 아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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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근처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 위치한 한 비닐하우스의 내부 모습. 연탄난로와 연탄이 방에 놓여있다. hwyoon@newspim.com |
전문가들은 비닐하우스촌이 시설적, 제도적 측면에서 화재에 취약한 점을 감안할 때 화재 예방 수칙을 준수하고 관련 장비와 시설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비닐하우스 주거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거 복지를 확충 등 다양한 방안을 시도해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대나 소방서가 비닐하우스촌 관련 정보를 사전에 파악해 화재시 최대한 빨리 불을 진압할 수 있도록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들도 비닐하우스에 가연성 재료가 많고 골목이 복잡한 만큼 화재를 진압하려고 시도하기보단 신속한 대피를 중심으로 화재 대처 요령을 익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비닐하우스는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화재 점검 등 법적 보호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데다, 폴리에스테르 등 쉽게 타는 소재로 구성돼 안전 조치를 취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비닐하우스 거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제도나 주거비용 지원 등 안전한 장소로 이주할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hw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