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교수 "비난 기꺼이 받겠다…역사에서 윤리는 우리 편일 것"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중국의 한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을 거친 쌍둥이 여아를 출산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한 가운데 약 120명의 과학자들이 이러한 비윤리적인 주장에 "미쳤다"며 공개 항의에 나섰다고 로이터통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이 26일 보도했다.
자신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과정을 거친 쌍둥이 탄생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허젠쿠이 중국 남방과기대 유전공학 교수 [사진=유튜브] |
온라인에서 나돌고 있는 공개 항의서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CRISPR-CAS9' 기술을 활용해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위험하고, 정당화될 수 없으며 중국 생물의학계의 발전과 명예를 해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CRISPR-CAS9은 3세대 유전자 가위로, 특정 염기서열을 인식하여 절단하고 편집하는 기술이다.
중국 매체 '더페이퍼(澎湃·The Paper)'에 게시된 공개 항의서 사본에 따르면 "이 연구에 대한 생물의학 윤리 검토는 이름뿐이다. 직접적으로 인간 실험을 하는 것은 미쳤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우리는 너무 늦기 전에 이 연구를 폐쇄시키는 자그마한 희망을 갖고 있을 지 모른다"며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개 항의서에 서명한 과학자 중 한 명인 양증강 푸단(復旦)대학교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유전자 편집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서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 광둥(广东)성 선전(深圳)시 소재의 남방과기대(南方科技) 허젠쿠이(賀建奎) 유전공학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CRISPR-CAS9 기술을 이용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을 목적으로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쌍둥이를 출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가 제2회 국제 인류유전자편집회의 개회를 앞둔 26일(현지시간), 해당 회의 관련자 중 한 사람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허 교수는 불임 치료를 받은 일곱쌍의 부부가 제공한 배아에 유전자 편집을 했고 한 쌍의 부부가 루루(露露)와 나나(娜娜)로 불리는 쌍둥이 여자아이 2명을 출산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교수는 남성들이 HIV 감염을 막는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고, 자녀에게 HIV가 전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이 개발된 만큼 HIV에 아예 면역을 갖춘 아이를 출산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생물유전학에 있어 큰 도약이겠지만 윤리적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관문이다.
허 교수는 이 비판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5일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나는 내 연구가 논란이 될 거란 것을 알지만, 나는 많은 가족들이 이 기술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나는 그들을 위해 흔쾌히 비판을 받겠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과학일보(科學日報)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허젠쿠이는 또 다른 영상에서 "우리는 윤리가 우리 편에서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믿는다"고 발언했다.
보도를 접한 남방과기대 측도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대학 측은 보도에 "충격"을 받았다며 허젠쿠이 교수는 지난 2월 무급 휴가를 떠난 이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허 교수가 왜 무급 휴가를 떠났는지 등 자세한 내용 언급은 거부했다.
허 교수는 중국에 살고 있지만 그는 대학과 대학원생 과정 모두 미국에서 수료했다. 남방과기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텍사스주 휴스턴 소재 라이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2011~12년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연구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인간 실험을 감행했는 지에 대한 배경은 미스터리다. 그가 미국에서 한 초기 연구는 대부분 이론상이었고, 생명물리와 '계량 유전체학(computational genomics)'에 집중됐다. 계량 유전체학이란 컴퓨팅 도구를 이용해 방대한 분량의 DNA 정보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두 학문 모두 임상의학과 거리가 멀다.
허 교수는 연구 결과에 대한 증거자료를 아직 발행하지 않았다. 그는 28일 홍콩에서 열리는 제2회 국제 인류유전자편집회의에서 프로젝트 데이터를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26일 성명을 통해 유전자 편집에 따른 아기 출산 관련 보도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광둥성 보건 관리들에 당장 조사에 착수해 사실 확인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선전시에 있는 의학윤리위원회도 이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