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500명 경제대표단 이끌고 방중
양측 밀착 가능성에 우려 목소리…"정상화 정도에 그쳐야"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중국과 일본의 관계가 '해빙기'를 맞은 모습이다. 수개월 전만 해도 앙숙으로 보였던 양국이 경제에서 밀월을 연출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5일부터 시작하는 2박 3일간의 방중을 계기로 중일 관계를 '새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무역공세에 맞선 양측의 밀착 행보가 지속될지 관심이 쏠린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할 예정이다. 27일까지의 일정으로, 26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일본 총리가 국제회의 참석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건 지난 2011년 12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이후 7년만이다. 한 일본 관리는 양국이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을 맞은 가운데 아베 총리의 방중은 양국 관계를 '새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좌)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 로이터 뉴스핌] |
◆ 아베, 500명 경제대표단 이끌고 방중…ODA 종료 상징적
아베는 중국과 제3국에서의 협력을 논하기 위해 주요 금융기관 및 기업 간부로 구성된 500명의 일본 경제 대표단을 이끌고 방중 길에 오른다. 중일 양측은 2013년 만료된 통화스와프를 되살리는 데 합의할 전망이다. 판다 대여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중일 정상은 2008년 합의 이후 중단된 동중국해 가스유전 개발 관련 조약체결 협상을 조기에 재개하자고 합의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약 4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대중 공적개발원조(ODA)를 이번 해를 마지막으로 종료키로 할 예정이다.
특히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이 될 제3국 인프라 프로젝트에 양국이 협력하고, 일본의 대중 ODA를 종료하는 건 중요하다고 FT는 평가했다. 게이오대학교의 소에야 요시히데 정치학 교수는 "ODA의 종료는 매우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것은 이 시점부터 새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제3국에서의 협력은 중국이 주도해 만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DB)에 일본이 참여하는 방안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힘을 실어줄 수 있으며, 제3국에서 인프라 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중일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문제로 양국에 공격 수위를 높이자 서서히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양측의 관계 개선은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양국 관계는 2012년 일본의 센카쿠 열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문제로 크게 악화됐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공격 표적이 된 양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관계 개선에 축배를 들며 자유무역을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양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 16개국이 참여하는 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합의 도출을 추진하고 있다. 2012년 11월 중국 주도로 시작된 RCEP 협상은 작년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관계가 틀어지자 RCEP 협상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RCEP는 미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추진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대항마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은 미국이 탈퇴해 일본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TPP의 가입 의사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日 전략적 입장은 불변…"관계 정상화 정도에 그쳐야"
이렇게 양측이 외견상 가까워진 분위기를 보이지만 양국이 본격적인 밀월기에 접어들기 위해선 해결해야할 과제가 산적하다. 양측의 주요 대립 사안은 깊은 지점에 자리한다. 현재 일본의 최대 우방인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전략적 접근법은 변하지 않았다. 일본은 안보 면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미국의 정책을 약화시킨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게 아베 총리의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센카쿠 열도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뿌리 깊다.
안보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경제 문제에서도 양국이 양보 못할 사안이 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비판적이긴하지만 중국의 기술 강제 이전과 산업 보조금 지급 관행 등에 대해 미국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기술 문제에 대해 날을 세운다. 일본은 차세대 이동통신기술이 출시되기에 앞서 중국 화웨이와 ZTE 등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들에 제한을 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WSJ은 중국이 일본과의 합작 벤처를 통해 고속열차 기술을 가로챈 후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데 활용하는 등 기술 분야에서 양국 관계는 이미 불신으로 얼룩져 있다고 논평했다.
일본 내에서는 중국과의 밀월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외교관 출신이자 리쓰메이칸대학교 객원 교수인 미야케 구니히코는 "아무도 중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과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국면에 접어든 걸 두고 관계가 좋다고 부르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쿄대학교의 가와시마 신 국제관계학 교수는 "일본은 중국을 다룰 때 미국의 관점에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아베 총리의 목표는 "(관계) 정상화를 지속하되 지나친 관심은 기울이지 않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