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야심작 '신촌 박스퀘어' 공실률 34% 달해
7월→9월 개장 예정일 늦춰져... '노점상과 마찰' 원인
"구청 지원 큰 도움 돼"vs"구청 말 번복할까 못 믿어"
서대문구, "강제철거는 없을 것. 설득 과정 거치겠다"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한솔 수습기자 =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 기차역 앞 광장. 3층 규모의 '박스퀘어'에서는 예비상인과 구청직원, 건설업자들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62개 중 21개. ‘뚝딱뚝딱’ 건설이 마무리돼가는 신촌 박스퀘어의 빈자리이다. 입점이 확정되지 않은 공실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7월 중 오픈 예정이었던 신촌 박스퀘어 개장 소식이 두 달째 무소식이다. 건설 지연 문제도 있지만 구청과 노점상 사이의 마찰에 따른 공실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 서대문구는 ‘노점상들의 자립’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박스퀘어 건설을 공식화했다. 이화여대 앞 노점상들을 대상으로 점포 및 경영컨설팅 등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노점상들은 ‘입점 여부’를 놓고 두 패로 갈라섰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광장에 먹거리·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박스퀘어가 지어지고 있다. zunii@newspim.com 2018.08.30 [사진=김준희 기자] |
구청 관계자는 “입점 상인들이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며 “9월 내 오픈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생’을 향했던 신촌 박스퀘어에 어떤 속사정이 있던 걸까. 속내를 들여다봤다.
◆백수 노점상에서 '어엿한 자영업자'로... 한 쪽에선 "구청 지원이 기회"
“비 오면 비와서, 더우면 더워서, 행사 있으면 비워줘야 해서 장사를 못합니다. 길바닥 장사는 지긋지긋해요.”
박스퀘어 1층에서 선반을 설치하던 ‘닭꼬치 사장’ 정명호(40·남)씨가 말했다. 정씨는 이화여대 앞 길거리에서 장사 경력만 12년이다. 박스퀘어로 입점하며 정씨는 노점상인에서 어엿한 자영업자 ‘사장님’이 됐다.
자영업자 전환에 따른 부담은 없을까. 정씨는 대번 “임대료·세금 등 신경쓸 게 아주 많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입점을 결정한 이유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정씨는 “일반 가게보다 더 잘 번다해도 노점에서 일하면 백수일 뿐”이라며 “대출도 받고 남들이 받는 혜택 받으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스퀘어의 노점상 월 임대료는 9만원 수준이다. 계약 기한도 무기한이다. 올해 말까지는 임대료와 관리비가 모두 면제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기차역 앞에 지어진 신촌 박스퀘어. 2018.08.28 [사진=한솔 수습기자] |
신촌역과 마주보는 대로변 방향에서 생과일주스 가게를 준비하던 김모(50대·남)씨는 “구청에서 장비지원과 수도·가스까지 무료로 해줬다”며 좋아했다.
김씨는 미입점 상인들에 대해 “목 좋은 큰길가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전하면 영업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대 앞이 유동인구가 더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차장이 이쪽에 있어 관광객들이 여기서 내린다. 또 박스퀘어 가운데 공용라운지를 두면 관광객들이 이것저것 먹어볼 수 있을 것 아니냐. 그런 이점 때문에 우리는 이전을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분주하게 가게를 청소하던 일부 상인들 얼굴에는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일본식 라면(라멘) 가게 창업을 준비하던 염인돈(67·남)씨는 “이전이 추진될 때부터 적극적으로 찬성해왔다”며 “6개월 전부터 업종 변경을 위해 집에서 국물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노점상들 "생존권 걸린 문제, 번복하는 구청도 못 믿어"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8월30일 이대정문~이대역으로 이어지는 길거리에는 노점상들이 천막을 치고 있었다. 박스퀘어까지는 약 230m 떨어진 거리. 오후 3시쯤 되면 15개의 노점이 영업 중이거나 영업용 수레차를 옮겨 놓은 상태였다.
귀걸이 등 액세서리를 팔던 A씨(40대·여)는 “구청을 못 믿겠다”며 박스퀘어 입점을 거부하고 있었다.
A씨는 “지금 쓰는 마차도 약 10년 전 구청에서 하래서 맞춘 거다. 500만원 대였다. 아직 마차 값도 못 갚은 사람들이 있다. 이전 구청장 때는 마차 맞추면 장사 보장해줄 것처럼 하더니 박스퀘어로 옮기란다. 책임자 바뀌면 또 바뀔 거 아니냐”고 비판했다.
노점상과 대화를 나누던 30분 동안 손님 10여명이 물건을 들여다봤다. 지갑을 꺼낸 손님은 50여분 만에 나타난 외국인 손님이 전부였다.
A씨는 “힘들어도 여기서 장사하면 단돈 몇 만원이라도 벌 수 있다”며 “저기 가면 먹고 살 수 없다. 돈 많으면 실험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월세 문제가 아니라 장사가 안 될 거 같다”고 푸념했다.
서울 서대문구 이대 정문 앞 거리에서 노점상들이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zunii@newspim.com 2018.08.30 [사진=김준희 기자] |
박스퀘어 입점에 부정적인 노점상은 대다수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 서부지역연합회 소속이다. 장정식 민주노련 서부지역연합회 이대지부장은 연세로 로드숍을 ‘실패한 선례’로 들었다.
서대문구는 2014년 5월 ‘걷고 싶은 거리’ 연세로에 스마트로드숍을 열었다. 연세로 주변에 있던 노점상을 지역 핵심 상권인 유플렉스를 피해 연세대 앞 굴다리, 신촌 전철역 주변 등으로 분산 배치했다. 포장마차 대신 규격화된 판매대를 유상으로 빌려줬다. 서대문구에 따르면 현재 28개 스마트노점 중 공실은 3개다.
장 지부장은 “하루에 몇 만원 팔다보니 공실 외에도 장사 안하는 집이 많다”며 “장사가 잘 되면 떠났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노점은 우리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인데 구청 말만 믿고 막 들어갈 수 없다”며 “만약 박스퀘어가 활성화 된다면 우리도 들어갈 생각은 있다”고 덧붙였다.
박스퀘어 공실. zunii@newspim.com 2018.08.30 [사진=김준희 기자] |
◆서대문구, 미입점 노점 16개 "강제철거 없다. 계속 설득할 것"
신촌 박스퀘어는 전체 62개 점포의 보금자리가 될 예정이다. 이 중 미입점 노점은 현재 21개, 노점상 몫으론 16개가 남았다.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나머지 미입점 점포 5개 중 2개는 전략적으로 유명 점포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청은 유동인구를 걱정하는 노점상들 의견을 수렴해 아이디어 넘치는 청년 창업가들의 입점도 함께 추진했다. 청년 대상 상점 16개는 현재 전부 만실이다.
일부 노점상들이 입점을 거부하며 ‘상생’을 내세운 서대문구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이대 노점거리는 △교통흐름 방해 △도시미관 저해 △노상 LPG 가스통으로 인한 안전문제 등으로 이대생·주민·보행자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던 곳이다.
구청 관계자는 “구는 노점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양지에서 상생하자는 것”이라며 “청년 점포 경쟁이 치열했는데 아이디어가 정말 톡톡 튄다. 기존 영업 방식을 고수하는 분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박스퀘어. zunii@newspim.com 2018.08.30 [사진=김준희 기자] |
박스퀘어 오픈 예정일은 아직 미정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될까. 서대문구는 노점상 철거를 강제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했다.
서대문구 측은 “일단 박스퀘어 미입점 노점은 현재 위치에서 계속 영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청은 계속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