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北 핵능력 무력화 없이는 美 종전선언 어려워"
보상 얻고 합의 파기 '살라미 전술' 에 대한 불신도 깊어
[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북한과 미국이 해묵은 논쟁거리인 '단계적 비핵화'를 놓고 다시 정면으로 충돌했다. 북한은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의 보상으로 종전선언을 원했으나, 미국은 핵·미사일 신고와 폐기, 그리고 검증과 사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10일 "미국이 주장하는 신속한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별 접근은 오래전부터 충돌돼온 것"이라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두 입장이 좁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굽히는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의 요구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약속, 미국의 불가침 선언 또는 조약 등이다. 궁극적으로는 북미관계 정상화까지 원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요구는 핵 신고와 폐기, 그리고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검증시스템을 갖추는 것 등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이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북한은 자국 요구와 미국의 요구를 적절히 매치시켜 단계별로 즉시 보상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미국은 일괄타결과 신속한 비핵화를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단계론적 접근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다만 초기에 북한이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단행하고 유해송환과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등을 약속했다. 미국은 이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했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실험장 폐쇄는 미래 핵만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전선언까지 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결국 현재 핵의 폐기와 검증을 원하는 것이다.
박인휘 교수는 "종전선언은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이며, 미국 의회 등도 넘어야 한다"면서 "북한이 아무리 비핵화 의지를 보여줬다고 해도, 핵능력을 상당수 무력화시키는 액션을 보이지 않고는 종전선언을 하기는 부적절하다고 미국은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그간 국제사회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 점도 미국이 단계적 비핵화를 망설이는 요인으로 꼽혔다.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합의' 등에서 미국이 북한과 관계 정상화를 합의했지만 북한의 핵 개발로 파기되는 일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은 "그동안 단계별 비핵화와 상응해서 보상해준다는것은 제네바 합의와 2005년 합의 등 여러차례 있었으나 북한이 지키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비핵화는 하지 않고 필요한 보상만 얻는 '살라미 전술'을 또다시 펼칠 것이라는 불신이 미국에 쌓여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고위급 회담 이후 외무성 논평을 통해 "미국측의 태도와 립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었다"면서 "미국 측은 싱가포르 수뇌 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가 '강도적'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한데 대해 폼페이오 장관 역시 "우리가 강도적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라고 받아치며 신경전을 벌였다. 아울러 한달만에 '최대 압박' 카드를 다시 꺼내들며 협상 결렬 상황에 대한 경고도 제기했다.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