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성평등, 인권 교육 우선”, “데이트폭력 현실에 맞는 기본법 필요”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데이트폭력의 실상을 파악하면 심각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증가세인 데이트폭력 사례를 보면 살인·강간 등 범죄혐의도 무거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은 여전히 ‘연인 사이에 해결해야 할 애정문제’ 쯤으로 취급된다. 대부분 상당기간 반복되다가 살인, 중상해 등 심각한 범죄피해가 발생된 후에야 처벌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 변화와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대다수 여성인 점을 감안해 ‘젠더 성권력’에 기반한 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9일 “성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데이트폭력의 주요 발생 원인이 ‘남성다운 남자’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성역할이므로 “성평등 관점에서 출발하는 인권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도적으로 주변을 통제·지배하는 전통적 남성성이 데이트폭력의 씨앗의 된다는 분석이다. 상대방의 행동을 통제하는 행위는 신체적·성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전제가 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실제로도 통제행동이 데이트폭력 상담 중 가장 많은 사례”라며 “성평등 인식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게 데이트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데이트폭력이 계속해서 사소한 문제로 치부되는 한, 증가하는 범죄를 줄일 수 없다. 송 사무처장은 “피해자들도 문제를 개인적으로 풀지 말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고, 사법기관에서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중대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 처벌이 어려운 현행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요구도 끊이질 않는다.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연인 간 폭력 범죄자의 76.6%가 전과자였다. 동종전과만 34.5%에 달했다.
데이트폭력을 별도로 규제하거나 처벌할 수 없는 현행법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장은 “현실적으로 데이트폭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안 잡혀 있는 상황”이라며 “데이트폭력만을 위한 법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들은 정서적으로 무너지고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법에선 폭행이나 성폭력 등 끔찍한 상태가 발생해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다”고 지적했다.
데이트폭력 중 하나인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에 규정된 ‘지속적인 괴롭힘’에 해당해 통상 범칙금 8만원 부과에 그치고 있다.
현행법상 데이트폭력은 그 행위 유형에 따라 경범죄처벌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형법,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의 적용을 받아 처벌하고 있다. 사전 예방을 위한 조치나 신고·처벌 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도 없는 실정이다.
김 소장은 “외국에선 우울증 등 심리검사 자료까지 첨부해 가해자 처벌에 활용 한다”며 “심리적 상태를 고려한 기본법을 마련해야 사각지대에 놓인 데이트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은 “법 개정이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관련법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기존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성폭력처벌법을 폭넓게 해석해 데이트폭력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