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남자기, 수차례 CB 리픽싱에 무상감자… 경영 '빨간불'
"도자기 외 제약바이오 등 66개 사업 확장, 무리한 투자"
[뉴스핌=전지현 기자] 국내 최초 도자기업체 행남자기가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따른 무리한 투자로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악화된 실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리면서 무상 감자를 결정하는 시련을 맛보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과 행남자기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 12일 90% 무상 감자를 결정했다. 감자가 완료되면 발행주식수는 1억1386만3050주에서 1138만6305주로 감소하고, 자본금은 569억3152만5000원에서 56억9315만2500원으로 쪼그라든다.
무상 감자란 대가 없이 주식을 소각시켜 자본금을 줄이는 것을 뜻한다. 주로 재무구조가 악화했을 때 회계장부 상 결손을 메우기 위해 단행한다. 행남자기 측은 "결손금 보전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통주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감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4대 경영세습과 수입산 제품 공세에 잃어버린 주도권
한때 '본차이나' 브랜드를 앞세워 한국도자기와 함께 국내 도자기산업 '쌍두마차'로 불렸던 행남자기는 1942년 고(故)김창훈 명예회장이 설립한 국내 토종기업이다. 2015년 11월 회사를 매각하기 전까지 4대째 경영 세습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행남자기는 국내 도자기업계에 수입산 제품 공세에 밀려 부진을 면치 못했다. 현재 국내 도자기시장 규모는 업계 추정 5000억원으로, 이중 수입산은 추정 시장점유율이 70%를 육박하는 반면 행남자기 시장점유율은 25%에 그친다.
유럽산 고급화에 더해 중국산 및 동남아산 저가 도자기에 자리를 내주면서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는 것은 물론 시장 주도권마저 잃고 말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행남자기는 70년간 도자기 한우물 경영에 매진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신사업 진출을 시도했다. 4세 경영 후계자인 김유석 전 행남자기 대표는 2004년 주도적으로 '크리스피앤크리스티' 제빵사업을 야심차게 시작하고, 김 생산공장을 준공해 식품업종에 참여했다. 로봇청소기, 신재생 에너지 개발, 의료기 및 화장품업, 중국 내 매체대행·유통업까지 수많은 사업에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제빵사업은 5년만에 철수하고, '맛김'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성과없이 대부분 사업을 포기했다. 결국 행남자기는 창립 73년 만인 2015년 11월 창업일가가 회사를 매각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주인은 3차례나 바뀌고, 상호는 2016년 9월 행남생활건강으로 변경했다 지난해 10월 다시 행남자기로 돌아왔다.
지난 1년반 사이 본사업과 연관성이 적은 무리한 투자 행보들로 대주주변경, 파산신청, 감자결정이란 시련도 겪는다. 특히, 잦은 대주주 변경으로 2015년 15개였던 사업영역은 지난해 3분기 무려 66개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행남자기 매출(지난해 3분기 기준)은 도자기류와 맛김, 기타 및 플랜트드로만 100%를 이루고 있다.
◆외부 운영자금 조달로 기업 존속.. 감자는 M&A매물 수순?
더 큰 문제는 운영자금을 수차례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 조달했다는 점이다. 행남자기는 2016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총 11회에 걸쳐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현재 현금성 자산은 약 6억원에 그치지만 미상환사채 총액은 63억원에 달한다. 그 사이 전환사채의 가격 하향 조정도 수차례 실시(1회차 CB 4회, 8회차 6회, 9회차 7회, 10회차 8회)하며 최초 전환가액을 1100원~2000원대에서 500원까지 떨어뜨렸다.
실적마저도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중이다. 행남자기는 수차례 전환사채 발행으로 2016년 157.36%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지난해 42%까지 줄여 부실했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등 투자자들에게 당근도 제시했다. 그러나 2015년 흑자였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 각각 31억원과 67억원의 누적 영업손실과 누적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의 본업 경쟁력을 잃고 있어 외부로부터 투자자금 유입 없이는 생존하기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행남자기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수년째 마이너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기업이 제품의 제조·판매 등 주요 영업을 통해 실제 벌어들인 현금 규모를 나타낸다.
행남자기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14년 13억원, 2015년 29억원, 2016년 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지난해 3분기까지도 29억원 적자 상태다. 반면 재무활동 현금흐름은 단기차임금과 전환사채의 증가로 지난해 3분기까지 104억의 유입을 기록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채권자들은 잇따라 파산신청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매그넘홀딩스가, 지난 11일에는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엔트네이처팜이 행남자기 파산신청서를 광주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행남자기에 대해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투자로 인해 사업안정성이 낮아진 상태로 평가하고 있다. 행남자기는 결손금 보전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이번 무상감자를 결정했다고 밝혔지만, 기업의 지속경영 가능성까지 불안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 시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대변화를 잘못 읽은 신사업 추진 등으로 국내 토종 브랜드가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통상 무상감자는 제3자 매각을 실시하기 전 밟는 절차라는 점에서 이번 결손보전이 M&A 매물로 가는 수순이 되는 것은 아닐지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전지현 기자 (gee10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