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중과 소통 철학’ 담긴 현대 건축물
뻥뚫린 공간 사이 자연 벗삼은 라이브러리
“골목길 돌아다니면서 책 고르는 기분 들고
콘크리트벽 허물어 사람 중심 동선 재창조”
[뉴스핌=김범준 오채윤 기자] 흔히 건축은 예술이라고 한다. 건축물을 아름답게 꾸미고 배치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인 건축미학(建築美學)도 있다.
하지만 건축물은 단순히 감상적 아름다움이나 예술로 그칠 순 없다. 건물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사회를 위해 창조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타임(Time)지가 '서울의 로렌초'라고 소개한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 고(故) 김수근 씨는 "건축미학이란 일상적인 기능의 근원적인 모티브를 추구해 인간과 그것 사이에 예정되는 조화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과 건축의 조화를 위해 건축가는 다양한 융합적 시도는 물론 철학을 담아 소통을 시도하곤 한다.
영국의 건축·미술 평론가였던 고(故)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위대한 건축작품은 도덕적 자질을 갖춘 건축가의 표현이며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건축가의 철학을 강조했다.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과 소통하고자 한 건축가의 철학이 잘 담긴 몇 가지 최신 건축물을 소개한다.
①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가아건축(건축가 최문규) 설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현대카드 뮤직라이브러리' 모습. [현대카드 제공] |
현대카드는 현재 서울 시내 4곳에 디자인라이브러리(가회동), 뮤직라이브러리(이태원), 쿠킹라이브러리(신사동), 트래블라이브러리(청담동)를 운영 중이다.
그 중 지난 2015년 한남동에 개관한 뮤직라이브러리(연면적 2962.95㎡)는 경사진 대지를 활용, 인공적인 계단보다 경사로 연결을 통해 공간의 연속성과 기능성을 살리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곳의 곡면 바닥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위치와 경사에 따라 자연스레 다양한 풍경과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야외 공연이나 잠시 쉴 때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도 변한다.
건물의 4분의 3가량이 뻥 뚤린 건물의 외관도 특징이다. 건축가는 '도시의 틈'이라고 명칭했다. 이 곳을 통해 한남동의 풍경은 물론 가까운 남산부터 멀리는 한강과 관악산까지 한눈에 펼쳐진다. 이 틈은 야외공연장으로도 활용된다.
공간을 이렇게 비워두지 않았다면, 건물 반대편의 멋진 풍경과 건물 속 야외공연이라는 새로운 풍경은 건물 밖 행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하는 공존의 철학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② 구산동 도서관마을
서울 은평구 구산동, 디자인그룹오즈건축(건축가 최재원) 설계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구산동 도서관마을' 모습. [은평구 제공] |
구산동 도서관마을(연면적 2550.25㎡)은 기존의 도시조직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 방식으로 지난 2015년 만들어졌다.
은평구는 필지 10개를 매입해 그 중 3동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연결한 브리콜라주 방식을 통해 도서관으로 재탄생시켰다. 골목길을 다니면서 책을 고르고, 방안에 들어가 독서하는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구산동 도서관마을' 자료열람실 내 책장 맞은편에 기존 다세대 주택 벽면이 그대로 보인다. [은평구 제공] |
기존 마을의 공간구조 및 풍경과 어울리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통과 공존의 철학이 담긴 것.
구산동 도서관마을은 지난해 '제10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과 '2016 서울시 건축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③ 홍현(紅峴): 북촌마을 안내소 및 편의시설
서울 종로구 화동, 인터커드건축(건축가 윤승현) 설계
서울 종로구 화동길 긴 옹벽을 허물고 탄생한 '홍현' 전경. 김범준 기자 |
지난해 3월 '홍현: 북촌마을 안내소 및 편의시설'(이하 홍현)이 준공되기 전까지, 정독도서관 부지는 인접한 화동길보다 높아 경계부에는 높이 4m 길이 35m의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옹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정독도서관과 북촌마을 간의 접근성 개선을 원했던 서울시교육청과, 주민지원시설 및 관광기본인프라 확충을 원했던 종로구청 간의 협력으로 옹벽이 허물어지고 지금의 홍현(연면적 150.08㎡)이 탄생했다.
'홍현' 탄생 전(왼쪽) 옹벽 모습과 준공 이후(오른쪽) 홍현의 야경. [다음로드뷰·대한건축사협회 제공] |
북촌마을과 서울교육박물관·정독도서관을 바로 잇는 '사람 중심'의 새로운 동선을 만든 것. 접근성 뿐만 아니라 주민 및 관광객들의 쉼터가 되면서 공공성 또한 크게 개선됐다는 평을 받는다.
참고로 홍현(紅峴)은 이곳 정독도서관 남쪽 고개의 옛 지명이다. 건축가는 그 뜻을 살려 외벽을 적벽돌로 꾸몄다고 한다. '대한민국 국토경관디자인대전' 대통령상, '서울시 갈등사례 우수사례 발표'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