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 허약해진 유가족에 심리적 지지
압화·뜨개질에 열중하며 스스로 치유 유도
국민이 보낸 먹을거리로 만든 한끼 먹으며
“누군가 나를 생각하는구나” 심리적방어막
[뉴스핌=이성웅 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3년하고도 한달이 훌쩍 넘었다. 5월과 6월, 이 두달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히 힘든 시기라고 한다. 사고가 일어난 건 4월 16일이지만, 희생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그 뒤이기 때문이다.
유가족들도 괴로운데,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죽할까.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희생자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들과 같이 드러난 아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구조활동에 참여했던 민간잠수사부터 구조 학생, 참사 당시 단원고에 재직 중이던 선생님들까지, 저마다의 아픔을 안은 채 3년이 지났다.
이런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지난 시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것이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다양한 상담센터들이다. 세월호를 치유하는 사람들이다.
◆ '포스트 세월호'를 준비하는 안산온마음센터
안산온마음센터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상담센터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이곳은 현재는 복지부와 경기도가 운영비를 내고 고대안산병원에 위탁운영 중이다.
안소라 온마음센터 상근부센터장은 세월호 참사는 한국에서 발생했던 다른 재난과 결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참사가 발생하면 초기에 심리적 응급처치를 하고, 일상으로 넘어가는 치유의 순서를 밟는다. 그러나 세월호는 교실 존치문제부터 인양까지 계속해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유가족이나 생존 학생들이 빠른 안정을 찾지 못하는 이유다.
온마음센터는 초기엔 장례식장과 팽목항, 서명운동 장소 등 곳곳을 찾아가 공감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응급처치를 시도했다. 이후 센터가 자리를 잡으며 심리적 응급처치를 조금 변형시켜 '심리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가정방문도 하고, 미술치료나 명상, 요가 등도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데 효과적이다.
온마음센터의 특징적인 프로그램은 '압화'다. 압화는 생화를 꽃이나 나뭇잎을 눌러 말린 뒤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것이다.
온마음센터에서 심리 치유를 받고 있는 유가족이 만든 압화. |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압화를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허약해진 상태의 이들이 하릴없이 아이 생각만 했다면 그 아픔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언가 단순 작업에 열중하게 해 스스로의 치유력을 끌어내 준 것이 압화였다. 압화에서 재능을 발견해 강사 자격증까지 딴 유가족이 있을 정도다.
◆ 한끼와 털실이 기다리는 '치유공간 이웃'
온마음센터의 압화와 비슷한 역할을 해준 것이 '치유공간 이웃'의 뜨개질이다. 안산에 위치한 또다른 상담센터인 이웃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심리기획자 이명수씨 부부가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정 박사 부부 역시 참사 초기 팽목항에서 유가족을 위로하다가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이웃을 기획하게 됐다.
주로 희생자들의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는 이곳엔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따뜻한 밥 한끼와 뜨개질할 색색의 실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들이 모여 자칫 아이 얘기로 우울함에 빠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었지만, 자원봉사자들이 뜨개질 강의를 해주면서 달라진 것이다.
엄마들은 이제 뜨개질로 만든 컵받침에 'OO이 엄마'라는 이름을 적어 지난 3년동안 도움의 손길을 건넸던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있다.
치유공간 이웃을 찾은 유가족들이 뜨개질로 만든 대형 카페트. |
이웃의 특징 중 하나는 밥상이다. 지난 2014년 유가족들이 찬 공기를 맞으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때부터 이웃은 유가족들의 밥상을 책임졌다. 정 박사는 이곳의 성격이 전면에 나서서 함께 싸우는 역할은 아니지만,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지원해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웃의 상근 활동가 문지원씨는 "함께 밥을 먹으면서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기 위해 보내준 식자재에 얽힌 사연과 요리를 해준 분에 대한 사연을 들려준다"며 "그러다보면 피해자들이 '누군가 나를 생각해주는구나'라는 심리적인 방어막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웃은 또 희생 학생들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친구들을 순식간에 앗아간 것이 세월호 참사다.
희생자를 친구로 둔 또래의 고통은 또다른 아픔의 유형이다. 참사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장례식장을 다니며 눈물을 흘렸지만, 자신의 아픔을 말할 곳은 없었다.
희생된 친구의 부모를 만나면 위로를 건네야하는 처지였다. 이웃에선 이들의 아픔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현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 "앞으로가 더 중요한 시기"
온마음센터의 안소라 부센터장은 최근 고민이 늘었다.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이 끝나면 센터 역할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 피해자들에겐 사태가 마무리되면 성취도 있지만, 공허함도 동반될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이 이 과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트라우마를 겪으면 성장이나 퇴행을 겪지 그대로인 사람은 없다"며 "혹시 퇴행을 겪는 사람들에 대해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돕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 부센터장은 국민의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네트워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자살률 1위 국가이지만 넓은 영역에서 보면 국내 정신건강 지원체계가 부족하다"며 "국립정신건강트라우마 센터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지역사회의 기존 정신건강증진센터를 활용한 트라우마 관리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고, 국립센터의 방향성을 확실히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