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자고 학원서 공부하고, 기·승·전·대입 올인
“공부의 기회비용, 자신·삶·세상 돌아볼 기회 놓쳐”
[뉴스핌=황유미 기자] "난 너무 불쌍해."
9살 딸아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나는 매일 공부만 해"라고 말했다. 학부모 A씨는 이 말을 듣고 '애가 오죽하면 이러겠나. 잘못하면 애 잡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날로 A씨는 딸아이가 다니던 피아노와 영어 학원, 수학과 한자 학습지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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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초등학교 2학년 딸은 평소 학교 수업 마치고 나면 집에서 점심 먹은 뒤,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영어학원을 다녀왔다. 저녁 먹고 나면 과목마다 학습지 5장을 풀었다. 그러고 나면 밤 9시가 넘었다.
A씨는 "다른 학부모들이 애들 학습지·학원 등을 다 등록하니까 했는데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다르게 잠 잘 시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엄마 서모(45)씨는 최근 아이에게 이상한 증상을 발견했다. 틱으로 의심됐다. 그러자 3시간짜리 주 3회 수학학원을 그만 두게 했다. 아이가 밤 10시에 돌아오는데, 힘이 쭉 빠진 채였다.
타임푸어(Time Poor), 시간빈곤은 직장인과 워킹맘의 문제만은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대입을 준비하며 청소년들의 학습시간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학습과 자기 돌봄, 여가 시간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10~24세 평균 학습시간은 6시간17분이었다. 평일 기준 초등학생 하루 평균 6시간49분, 중학생 8시간41분, 고등학생은 무려 10시간13분을 학습에 사용했다.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학원가에서 학교를 마친 학생들이 학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장모(서초중2)군은 "수학과 영어 학원을 다니는데, 마치면 10시반 집에 도착한다"며 "씻고 숙제하면 새벽 1시 넘어서 잔다"고 했다.
학생들은 장시간 공부가 성적 향상에 도움되는지 의문을 표한다. 김모(서초중2)군은 "매일 피곤함을 느낀다"며 "장시간 공부는 일정 부분 성적을 올릴 수 있겠지만 학교에서 자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수학·영어·보컬학원을 다닌다는 김지윤(여·중2)양 역시 "학원을 세 군데 다니니까 숙제가 많아 밤을 샐 때가 종종 있다"며 "학교에서 결국 졸게 되고, 숙제도 서로 베껴가며 급하게 하니까 공부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2014 생활시간 조사'에서도 10대 청소년의 고단함은 드러난다. 피곤함 정도를 묻는 질문에 74%가 "피곤하다"고 답했다. 평소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비율도 63.8%나 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좋은교사운동' 등은 청소년들에게 쉴 시간을 주고 사교육도 줄이자는 취지에서 '학원 휴일 휴무제'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송화원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가는 "주 5일제로 시행되는 노동자와 다르게 우리 학생들은 '학습노동'에 월화수목금금금 1주일 내내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학습에 장시간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삶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황윤옥 하자센터 부센터장은 책 '도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우리 아이들이 수능을 위해서만 시간을 쓰면서 치르게 되는 기회비용은 너무 비싸다"며 "공부시간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은 잠과 쉼, 여유의 시간들이다. 결국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 세상을 보는 시간,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