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는 소녀들'이 논란이다. <사진=네이버 V LIVE 캡처> |
[뉴스핌=황수정 기자] 보기만 해도 예쁜 걸그룹에게 잘 먹기까지 강요하고 있다. 걸그룹에게 다이어트는 숙명이라는데, 이를 완전 뒤집었다. 예쁜 소녀가 복스럽게 먹으면 누가 싫어할까. 그런데 '잘 먹는 소녀들', 시청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난 15일 JTBC '잘 먹는 소녀들'이 포털사이트 네이버 V LIVE를 통해 생중계 됐다. '잘 먹는 소녀들'은 트와이스 다현과 쯔위, 에이핑크 남주, 아이오아이(IOI) 강미나, 레드벨벳 슬기, 시크릿 전효성, 나인뮤지스 경리, 오마이걸 지호가 각각 1대1 먹방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
걸그룹 멤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골라 10분동안 먹방을 펼친다. 그리고 최종 승리를 한 '먹방 요정'이 되면 금목걸이를 받는다. 김숙, 조세호, 양세형이 MC로 이들의 먹방을 중계하고, 최근 대세로 떠오른 김흥국과 민경훈이 특별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걸그룹에 먹방, 생중계 등 요즘 트렌디한 요소는 다 포함돼 기대감을 모았지만, 막상 베일을 벗고나니 실망감만 가득했다.
성치경 CP는 "먹는 걸 좋아하는 걸그룹 멤버들이 직접 선택한 메뉴로 각자 자신만의 노하우로 먹방을 펼친다"며 "먹방 자체가 대리만족이며,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잘 못 먹는 사람을 억지로 먹이는 게 아니다. 걸그룹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제해야 했던 것을 소속사의 허락 하에 공식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준 것. 멤버들도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달랐다. 참여한 소녀들은 마음껏 먹음으로써 즐거웠을지 몰라도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불편을 넘어서 경악에 가까웠다.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단 10분 동안 먹는 것을 반복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구조, MC들의 미숙한 진행, 새벽 1시를 넘긴 너무 긴 녹화 시간 등 문제점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 번에 8강과 4강을 펼치니 두 번 대결해야 하는 소녀들의 힘겨움이 눈에 보였고,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혹시나 건강을 해칠까 불안에 떨어야 했다.
'잘 먹는 소녀들'에 대한 네티즌 반응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푸드파이터'가 아니고 얼만큼 '맛깔나게' 잘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그들은 푸드파이터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기준 자체가 너무 주관적이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 '많이' 먹는 것 아니었을까. 뿐만 아니라 승자를 뽑는 문자 투표(더군다나 '유료')는 걸그룹 팬덤간 싸움을 부추기는 구도처럼 느껴졌고 병풍으로 전락한 '흥궈신'(김흥국)과 '쌈자신'(민경훈)은 왜 나왔어야 했냐 의문이 들 정도.
이쯤되니 지난해 설 특집으로 편성됐던 KBS 2TV '본분 금메달'(본분 올림픽)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본분 금메달'은 성 차별적 시선과 성 상품화, 가학성 등의 논란이 거셌다. 걸그룹의 본분(미소, 이미지, 리액션, 참을성 등) 자체가 의문을 낳았고, 이를 측정하기 위한 테스트는 인권 유린의 장이라는 비난만 샀다. 결국 지난 3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제5호, 제30조(양성평등)제3항, 제36조의2(가학적·피학적 묘사) 위반으로 주의 조치 했다.
이전에도 MBC '꽃다발', KBS 2TV '청춘불패'(시즌2까지 나왔다), SBS '영웅호걸' 등 걸그룹이 주축이 된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들 역시 논란은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청춘불패'는 욕설, 선정성, 자막과 벌칙, 표절 논란까지 불거지며 홍역이 끊이지 않았다. 세 프로그램 모두 저조한 시청률로 폐지되고 말았다.
걸그룹 성 상품화 논란으로 징계 받았던 '본분 금메달' <사진=KBS 2TV '본분 금메달' 캡처> |
JTBC는 또다른 걸그룹 예능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데뷔 후에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걸그룹 메인보컬들을 모아 경연을 펼치는 '걸 스피릿'. 12명의 걸그룹 메인보컬들이 숨겨진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며 조세호와 인피니트 성규가 진행을 맡는다. 연출을 맡은 마건영 PD는 "아이돌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졌던 메인보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발산할 기회를 제공하고 숨은 실력자를 발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JTBC는 음악 예능의 강자다. '히든싱어' 시리즈의 성공과 종영을 앞두고 있지만 '슈가맨' 열풍도 거셌다. 할머니들의 래퍼 도전기를 담은 '힙합의 민족'도 호평을 받으며 끝났다. 이번에는 걸그룹이다. 그런데 이미 숨은 실력자들은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많이 드러났으며, 걸그룹이 출연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음악 경연 프로그램과 차별점이 있는 것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잘 먹는 소녀들'처럼 논란은 아니더라도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공산이 크다. '잘 먹는 소녀들'과 '걸 스피릿'은 오늘 7월 방송 예정이다.
'걸그룹'이 출연하면 화제도 많이 되고 시청률 상승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걸그룹'이기에 더 따지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많을 뿐더러,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걸그룹'이기에 더 거센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걸그룹을 데리고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느냐다. 걸그룹의 인기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뉴스핌 Newspim]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