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나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시인 윤동주의 삶이 71년 만에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18일 개봉하는 영화 ‘동주’는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빛나던 청춘을 담았다.
이제는 대세가 돼버린 배우 강하늘과 박정민이 윤동주와 송몽규를 각각 열연했고 대한민국 대표 흥행 감독 이준익(57)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꼭 필요한 환경만 갖춰 최대한 소박하게, 대신 매 순간 예를 다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찍은 작품이 바로 이 ‘동주’다.
“그간의 영화하고는 다른 마음으로 찍었어요. 때문에 작품이 상업적인 형식을 갖고 있지 않죠. 흑백에 저예산, 그리고 시인을 소재로 한다는 것도 오락적인 요소에서 굉장히 불리하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화한 이유는 그 시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윤동주, 송몽규가 목표 지점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그 시대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어요.”
이준익 감독이 이처럼 일제강점 말기에 집중한 이유는 그간 사람들이 1940년대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봤을 때 영화로 많이 재현된 시대도, 연산이나 광해 등 인물에 대한 공감도가 높았던 때도 조선 시대였다는 것. 물론 지난해 영화 ‘암살’이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줬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역시 1930년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는 항상 지나간 시대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치부해요. 특히 1940년대 식민지 말기는 아예 머릿속에 없죠. 근데 영화 속 두 인물을 따라가 보면 그 안에 내 아버지가, 내 할아버지가 있어요. 결국 나라는 존재는 그들이 겪고 만들어온 시간에 의해 등장했거든요. 그걸 알아야죠. 또 영화상에서는 동주, 몽규로 도달했지만, 거기에 있던 모든 젊은이가 죽는 순간 외치고 싶던 그 한 마디가 누구를 향했는가 집중해야 해요. 바로 일본 군국주의거든요. 시대를 알고 당시 군국주의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부도덕성에 대한 추궁, 그게 이 영화가 도달하려는 종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은 이런 이준익 감독의 뜻을 읽은 관객이 그리 많지 않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일은 고마운 일이나 방향이 다르다는 말이다. (실제 ‘동주’ 개봉에 힘입어 새로 나온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시’ 초판본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모두가 너무 감상주의적 시각으로 영화를 봐 안타깝다는 게 영화를 만든 이의 속내다.
“윤동주 선생의 시를 보여주려고 찍은 게 아니니까요. 근데 사람들은 시만 좋다는 거예요. 아이러니죠. 수능 치면서 다 배웠잖아요. 몰두하면서 가슴에 새겼잖아요. 근데 왜 그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윤동주 선생 역시 자기가 멋진 시를 쓰려고 쓴 거겠습니까. 결코 아니죠. 뜬금없이 나오는 시는 없어요. 그의 삶과 죽음, 시대와 밀접하게 매칭돼 있죠. 우리는 시대의 아픔이 머릿속에 없으니까 그저 시에만 머물러 있는 거고요. 마음이 아프죠.”
캐스팅 역시 요즘 이준익 감독을 속상하게 하는 단어다. 앞서 ‘사도’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유아인이 동주 역을 탐냈다는 일화, 강하늘과 박정민을 추천한 황정민이 실은 자신의 출연을 먼저 자처했다는 이야기 등이 공개되면서 의도치 않게 화제가 된 거다.
“아니, 황정민이 무슨 역할을 해요? 할 역할이 없잖아. 윤동주 아버지로 나옵니까?(웃음) 그리고 생각해봐요. 황정민이 윤동주 선생 아버지로 나왔다고. 그럼 관객은 뭘 보겠어요? 황정민을 보거든요. 그에게 시선이 뺏길 수밖에 없죠. 유아인도 마찬가지고요. ‘유아인을 연기한 윤동주’가 돼버리잖아요. 싫었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황정민, 유아인, 캐스팅 이런 거로 자꾸 이야기가 나오는 게 편치 않아요. 그들에게도 미안한 일이고요.”
그렇게 이준익 감독은 인터뷰 내내 속상한 마음에 언성을 높이다 또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제작부터 촬영, 편집에 이르기까지 윤동주 시인에 대한 예를 갖췄던 이준익 감독은 홍보 시간까지 영화에 담은 제 뜻과 의도가 왜곡되지 않게, 그리고 이것이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윤동주 선생의 나약함, 그 가슴 아픈 절절함…. 전 그런 윤동주 선생과 그 삶에 죄송해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윤동주 선생은 스물일곱, 여덟 살에 시대의 아픔을 그렇게 절절히 느꼈는데 과연 나는 그랬는가. 절대 그러지 못했거든요. 속된 말로 쪽팔린 거죠. 어쨌든 그런 마음을 담아 만든 이 영화는 윤동주 선생에 대한 미안함의 고백입니다. 많이 모자란 영화감독이라 창피한 마음뿐이지만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 페이스북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