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위에서 뛰어노는 광대, ‘THE 광대 안대천’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은 말한다. “한양으로 가자. 가장 큰 판을 벌이는 거야.” 장생과 공길은 한양의 놀음판에서 자신들이 가진 온갖 재주를 보인다. 재주넘기, 줄타기, 버나놀이 등 사람들은 환호한다. 환호 받던 광대들은 어느새 궁궐도 사로잡는다.
우리는 이들을 광대라 부른다. 판소리, 가면극, 곡예 따위를 업으로 하는 사람을 통틀어 이르던 말로 지금은 이러한 광대를 만나기 위해선 국악원이라든지, 민속촌 등의 행사 장소를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 지금 서울의 가장 큰 판이 벌어지는 곳이다. 2015년 가장 큰 판에서 가장 잘 노는 광대들이 있다. 이름도 ‘THE 광대’다. 30대 후반의 대표부터 20대의 팀원들까지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
수많은 연희 팀 중 ‘THE 광대’의 공연은 단연 편안하고 즐겁다. 실력이야 말할 것도 없이 으뜸이다. 관객과 사회자가 마치 예전부터 친했던 것처럼 웃음을 주고, 받고 흥겨움에 함께 춤춘다. 무대도 객석도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실수를 한다 해도 함께 웃으며 다시 놀음으로 바꾼다. 여유가 있고, 공연의 흐름이 좋다. 다수의 공연을 봤지만 광대 팀의 공연은 너무도 편하다. 그 중심엔 대표 안대천이 있었다.
가을이 올락 말락 장난을 치는 것 같던 10월의 어느 오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앞 이리카페에서 안대천 대표를 만났다. 조용히 대화를 하기 위해 지하 테이블로 내려갔지만 안대천 대표의 인터뷰로 지하에도 껄껄 웃음 소리가 가득 찼다.
“고등학교 고성오광대 서클에 예쁜 애가 있어서 그때부터 탈춤 시작했죠. 걔는 2주일 만에 관뒀고 (웃음). 그러고 나서 나도 2주정도 있다가 관둬야지, 관둬야지 하는데 서울에서 대회가 있다는 거예요. 그때까지 전 서울 한 번도 못 갔거든요. 서울 한 번만 가보고 관두자 했는데, 지금까지 왔네요.”
국악을 시작한 첫 에피소드부터 참 광대답다 싶었다. ‘재밌어서, 신나서’ 그렇게 30대 후반인 지금까지 달려왔다. 안대천은 THE광대의 대표이면서 고성오광대에는 이사로 재직 중이다. 다들 그가 탈춤 전공일거라 쉽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풍물 전공이라고 한다.
“서울예대 들어갔다가 예대의 연희는 저와 색깔이 맞지 않는 거 같아서 (더 몸을 쓰고 나대는, 날뛸 수 있는 연희를 원했다) 군대에 갔습니다. 군악대에 들어가서 한예종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상병 때 예종 시험을 준비했는데 1차에 덜컥 붙더라고요. 아직 군인인데. 군인이라고 합격 안 시켜주면 어쩌나 하면서 ‘그래 군인인 걸 말하지 말자!’ 하고 구술 면접을 보는데 김덕수 선생님이 ‘너 언제 제대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솔직히 ‘내년 1월 제대입니다.’ 말씀 드렸죠. ‘아, 난 안 됐구나!’ 했는데, 합격했더라고요. 그래서 등록 하자마자 휴학하고 다음해에 들어갔죠. 김덕수 선생님은 저보고 사기꾼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웃음)”
한예종 연희과는 현재 안대천 대표 공연의 밑거름이 됐다. 학부 때 배운 것들을 배경으로 모든 창작이 나오고 있고, 팀원들도 학부 동기 다섯 명으로 시작 됐기 때문이다.
“학부 재학시절 연희과 동기들과 연출가님의 지도하에 우리들의 아이디어로 연희극을 만들었어요. 시간이 좀 지나고 다른 공연에서 수업 당시 만들었던 우리 아이디어가 무대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본거죠. 좀 서운했죠... 그 때 우리들만의 아이디어로 창작 연희극을 만들자 결심했어요. 졸업하던 한예종 동기 5명과 또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소속돼 있는 고성오광대의 탈춤 5명이 모여서 2006년도 1월 2일날 연희단 THE광대가 태어났습니다.”
지금의 THE광대는 13명이 식구고, 10명이 연기자고 기획자가 3명이다. 기획팀이 엄마역할을 안정적으로 잘 해주고 있어 연기자들이 더 신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그리는 연희 그림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안대천 대표. 한예종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이기도 하다. 이번 한예종 연희과 총 동문회때는 사회를 맡기도 했는데, 연희 공연보다도 사회가 더 재밌었다는 평이 있기도 했다. 이 흥겨운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THE광대는 기본적으로 밝고 유쾌합니다. 지방 공연을 간다 해도, 공연을 준비하기 위한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공연에 들어가 놀 수 있는 놀거리를 찾습니다. (웃음) 어디를 가든 놀 거리를 찾으니 분위기가 밝고 유쾌해요. 거기에 다들 각자의 전공분야도 확실하거든요. 탈춤전공도 있고, 굿 전공도 있고, 남사당 전공 등 각자들 전공이 다르거든요. 공연물은 전문 분야로 승부하니 자신도 있고요. 계속 다들 공연 속에서 놀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놀궁리를 한다는 안대천 대표의 표정에 장난끼가 가득 찬다. 안대천 대표는 연희 공연에 있어서 관객과 늘 눈높이를 맞추며 공연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눈높이가 그렇게 높지가 않다며 겸손하게 웃어보기도 했다. 늘 대중들과 신나게 같이 잘 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궁금했다. 매년 똑같이 관객과 눈높이를 맞춘다면 연기하는 사람들의 재미는 매년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궁금했다.
“ ‘놈놈놈’ 공연으로만 보자면, THE광대팀은 일단 소통에 대한 중점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언행은 20~30%를 넘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기량이 보여 져야 하는 극의 꼭지와 전체 흐름은 계속 발전을 해야 하는 건 분명하죠.”
소통을 통한 재미와 기량으로 보여 지는 재미를 구분지어 생각한다. 팀원들이 워낙 전문적이니 이런 구성에도 자신있는 팀이다. THE광대는 비중을 잘 나누는 팀이다. 100이라는 공연물 안에 음악, 연희, 춤, 소리의 그 정도를 잘 나눈다. 이런 THE광대의 도전은 어디까지일까.
“한때 THE광대를 기반으로 국립 연희단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그간의 국립 연희단이 잘 안됐던 것은 연희가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예요. 각자 너무 잘하시는데 워낙 쎄서 힘을 뭉칠 수가 없어서였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 안대천은 내가 나서지 않고, 연희팀들이 뭉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나 생각하니 우리 팀도 현재는 힘들더라고요, 꾸준히 창작은 해야겠고, 공연도 많이 하니 준비 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구요. 연희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들만의 광대들의 리그, 연희판만의 리그를 꼭 만들어 보고 싶긴 해요. 아직 멀었지만 말이예요'
내년 3,4월 중에는 장기공연을 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기획하고 있다는 안대천 대표. 2013년도 남산 국악당에서 공연했던 ‘굿모닝 광대굿’을 시즌2 개념으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영화 왕의 남자 속 장생을 만난 듯, 살아있는 광대의 눈빛을 마주한 시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팀원과 그리고 관객과 함께 노는 것이기에 즐거운 이 남자, THE광대의 안대천이 있기에 우리 연희판의 미래는 상상만으로도 유쾌하고 명쾌하게 그려지고 있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