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는 생긴지 38년이 된, 이제 막 중년에 들어서려 하는 우리의 음악 중 하나이다. 38살의 어느 직장인처럼 중후하고, 젊으며, 묵직한 존재라고 표현하고 싶다. 1978년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끊임없이 발전해 온 현대 국악. 장구, 북, 징, 꽹과리 4개의 악기로 화음을 만든다. 이를 사물 악기라고 한다. 이 사물의 흥겨운 장단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지난 8월, 경북 칠곡에서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대회’가 열렸다. 이번에 개최된 '2015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한마당'은 경상북도와 칠곡군에서 공동 주최하고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에서 주관하는 스물두 번째 행사로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엿새 동안 국내외 100여 팀 2천여 명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펼쳤다.
역대 사물놀이 겨루기 대회에서는 전통을 잘 표현해내는 팀이 대통령상을 수상하곤 했었다. 그러나 2015년은 달랐다. 우리의 사물놀이를 현대적으로 잘 해석한 창작팀에게 종합 대상인 대통령상이 수여됐다. 최초의 일이었다. 그 팀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천우’다.
천우 팀을 만난 건 어느 늦은 밤, 홍대 연습실 인근 카페에서였다. 근처에 음악인들을 위한 연습실이 많아서인지 작업하는 젊은 청춘들이 많이 있었다. 임종현 대표가 카페에 들어섰다. 선하고 줏대가 있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눈빛이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천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는 뜻으로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동창들로 구성됐다. 임종현 대표는 1988년 생으로 중앙대학교에서 타악을 전공했고, 현재는 중앙대학교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천우 팀을 이끌고 있다고 소개했다.
징과 소고의 김용훈(한예종), 북을 담당하는 박다열(중앙대), 대금 및 태평소의 성휘경(한예종), 꽹과리의 전대진(한예종)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작곡의 박세웅(중앙대)이 합류해 5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 창업 보육 센터를 통해 첫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 예비 기술 창업자 육성 사업이었어요. 그때는 디지털 교과서 사업을 했는데, 국악 교육 영상만 400개, 장단 및 초중고급 과정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운영비가 생각보다 비싸서 지금은 음악 활동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임대표. 자신의 도전을 이야기하며 연신 신나하고 눈빛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열정이 느껴졌다.
천우는 연희 팀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팀이기도 하다. 임대표는 군 복무 시절, 군악대 밴드의 전자 악기를 보고 우리 국악도 전자 악기를 보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복무 내내 사업 계획서를 쓰는 방법, 보고서 쓰는 방법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제대 후엔 교수님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고서로 정리해 메일로 보냈고 한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전자 장구 도전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전자 장구 개발은 이미 완료했습니다. 보급하기 위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게 좋을지 그 부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더 세밀하고 더 치밀해져야 한다는 걸 일하며 매번 배웁니다.’
이제는 전자 장구가 완성되었으니 전자 북, 징, 꽹과리 모두 도전하고 싶다는 임대표. 가히 20대 타악 주자 중 특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친구들로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언제 어디서나 장단을 치고 새로운 음악을 연습한다. 술자리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국악 이야기를 나누며 날밤을 새기도 일쑤. 그러다 이내 좋은 음악이 나오면 작곡가 박세웅과 함께 작업에 들어간다. 수차례 음악을 반복하며 계속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화(華)를 발표했다. 화(華)는 동해안 별신굿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으로 2014년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물놀이라는 전통을 수용하는 시기적 상황에서 동해안별신굿의 장단과 무가에 사용되는 메나리조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 구성이 인상 깊은 연주이다.
동해안 별신굿의 해석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올해 2015 세계 사물놀이 겨루기 대회에서 종합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대중들에게 각 지역별 굿 문화를, 음악을 알리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임종현 대표에게 물었다. 길고 긴 대화가 시작됐다.
‘천우 팀에서만 고민을 하는 게 아니고 모든 국악인들이 고민을 할 것입니다. 시대성을 갖는 음악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동해안 별신굿의 음악을 도전 한 것입니다. 다른 팀들과도 많은 작업을 하는데 시대성에 대해선 그 누구도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대성이 사물놀이가 아닐까 합니다. 78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 그 어떤 전통보다 활성화돼 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들이 그 시대에서 사물놀이라는 시대성을 찾으셨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5년 현재의 음악 말입니다. 지금 굿에 대한 재해석에서만 멈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음악으로서 역할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제시하는 음악을 할 것이냐, 소통하는 음악을 할 것이냐, 이 선택에서 우선 저 개인적으로는 대중에게 제시하는 음악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시대성만 따라가다 전통 음악의 본질을 위협하진 않을까, 혹은 시대성을 놓치고 대중도 놓치게 되진 않을까 늘 고민이라고 하는 임대표. 하지만 이런 고민들 속에서도 천우만의 색깔을 놓치지 않는다면 언젠가 시대성의 정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유치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천우의 음악과 천우의 색깔이 유치해지지 않길 바라요.’
유치해진다는 게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밴드에 얹어가기만 하는 국악,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음악들이요.’
단호하다. 눈빛이 명쾌해졌다. 확실한 국악 장르의 음악으로 대중 앞에 서고 싶다는 천우 팀. 천우 팀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천우- 사물놀이 완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문화가 있는 날 - 작은 음악회’ 사업, 서울시 우수 국악 작품 육성 지원 사업 ‘만판’을 통해 대중과 쉬지 않고 소통하고 있다.
다시 임대표가 기분 좋게 웃는다. 관객을 생각하면 기분 좋고, 사물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는 임대표. 천우 팀의 60대는 어떨까, 임대표에게 물었다.
‘계속 쉬지 않고 도전을 하다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물놀이요. 우리 팀이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반영된 악기가 사물이니까요. 술 마시면서 서로 웃다가 욕하다가 장난치다가 그러다 다시 또 연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가지 악기의 정해져 있는 장단의 흐름을 벗어나는 게 지금은 참 너무도 힘듭니다. 하지만 힘드니까 더 노력하게 되죠. 아마 60대엔 장단 이상의 무엇을 연주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세웅이도 있고, 휘경이도 있고, 다열이, 대진이도 5명 다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은 게 꿈입니다.’
11월 28일 북촌 창우극장에서 진행될 천우 팀의 첫 콘서트가 더욱 기대된다. 전통연희의 재구성을 찾고 싶다는 임대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해 매일 연습이 즐겁다는 천우 팀원들. 이토록 청춘일 수 있을까 싶다. 너무도 푸르러 눈이 부신 청춘의 천우 팀이었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