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음악이 있다. 사단칠정(事端七情)을 담은 이상한 음악이 있다. 음악 같기도 하고, 음악 아닌 것 같기도 한 음악이 있다. 음악은 맑고 고운 것이 매력적인데, 이 이상한 음악은 맑고 고운 것 보다는 거칠고 탁한 것이 더 어울린다. 지구상에서 ‘이 같은 음악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상한 음악이 있다. 이를 <판소리>라 한다.
판소리는 음향기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잘 들리는 정도의 공간에서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鼓手) 두 명이 벌이는 종합음악이다. 판소리는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민족이 생기고, 우리나라가 생긴 이후 온 민족이 수천 년을 두고 만들어 온 음악이다. 짧게는 수십 분에서 길게는 열 시간 가까이 한다. 내용은 시, 수필, 역사, 소설, 철학 등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 섬진강 동쪽 소리가 동편제다. 남원, 구례, 순천 등지에서 크게 발달했다. 통음이 특징이고 남성적이며 씩씩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 마을에서 발달한 소리다. 보성, 광주, 나주, 목포 등지에서 많이 불렸다. 사람의 감정을 아주 정교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중고제는 서울, 경기, 충청 일원에서 불리는 던 소리다. 무덤덤한 맛이 특징이다. 아쉽게도 이 중고제는 소멸위기에 놓여 있다.
노해현. 서른다섯 살 난 여성 판소리꾼이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천초등학교, 북성중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우연이 명창 조상현과 인연이 있는 고모로 인해 7살 때부터 판소리꾼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적벽가를 제외한 판소리 네 바탕을 모두 배웠다. 수궁가와 홍보가는 박초월, 심청가는 박동실, 춘향가는 성우향 바디다.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춘향가 <이별가>다. 상청, 중청, 하청을 모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목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요즘 보기 드물게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 젊은이는 탈 수 없다는 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바 있다. 2012년 광주시에서 주최한 임방울 국악제에서 명창부문 장원을 한 것이 그것이다.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근대 5명창이 다시 살아서 나온 것 같은 소리를 한다. 고제古制 맛이 깊게 난다.
화장 없는 민 낮으로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자신감이 온 몸에 꽉 차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신에 차 있었고 논리적이었다. 묻지 않았는데 국악이라는 말에 대한 소회를 말했다. “국악이라는 말이 국악의 깊고 높은 예술성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요.” 순간, 아직도 ‘국악이다.’ ‘아니다 국악은 일제가 만든 말이므로 한국음악이라고 불러야 한다.’ ‘트로트 등 대중가요도 한국음악이다. 무엇으로 우리소리와 트로트를 구별할 것이냐?’라며 아직도 우리소리에 대해 학술적으로 정책적으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비수처럼 심장을 찔렀다.
“판소리의 가장 큰 멋을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소 뚱하다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명쾌했다.
“판소리의 멋과 맛은 ‘이거다.’ 라고 말하기 곤란할 정도로 많습니다. 그래도 꼽으라면 혼자서 여러 인물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음역 대를 폭 넓게 사용하여 심오한 인간의 심리와 생각, 관계 등을 오직 북 반주에 맞추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양하게 연출하는 것입니다.”
“판소리는 여러 가지 기술을 사용합니다. 그 중 시김새는 판소리의 맛을 좀 더 실감나게 하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세월이 묶어야, 곰삭아야 나오는 것이 시김새라고 합니다. 시김새를 잘해야 명창이라고도 합니다. 시김새가 무엇입니까?”
“시김새는 판소리에서 분명 중요합니다. 중요한 기술임에는 틀림없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판소리 기술 중 으뜸이라고 꼽을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 판소리를 배우러 가면 시김새 훈련을 받고, 그것을 잘해야 소리를 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보니, 소리가 익으려면 소리 자체를 폭 넓게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기교, 감정, 공력이라는 큰 주머니 안에 들어있는 요소 중 하나가 시김새 일 뿐 입니다.
기술 좋다고 소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울고 웃기는 것을 잘해야, 진짜 잘 하는 것입니다. 상청이 나와야 할 때 나오고, 하청이 나와야 할 때 나와야 합니다. 하청이 나와야 할 때 바람소리만 나오고, 중청만 가면 떨림 현상이 나오는 애기소리가 나오면 시김새, 각구녁질 소리 등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소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타고난 소질이 있느냐? 몇 살 때 시작했느냐? 일반적 경험이 복합적으로 녹아 있어야 그나마 소리가 됩니다. 그만큼 판소리는 어렵습니다. 시김새가 판소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판소리는 분명 우리의 대표적 소리입니다. 또 음악성도 대단히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못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악 중 판소리의 예술성이 제일임에도 불구하고 좀 과장된 말 같습니다만 일반 통기타 가수만도 못한 인기를 누리는 것이 판소리꾼의 솔직한 현실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 대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에 슬픔을 느낍니다. 한 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만 판소리를 들을만한 귀명창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꾼은 감정을 다 만들어 놨는데 이를 들을 사람이 없습니다. 귀명창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 유감입니다. 귀명창이 없어지는 이유는 소리꾼이 기교와 돈 벌이에 치중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 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학교에서 국악 교육을 못 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 선생님이 우리 소리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12년 간 음악교육을 받으면서 ‘도레미파솔라시’의 7음계만 배우니 당연히 우리 것을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면장도 알아야 해 먹는다고 우리 것을 알아야 귀에 들리는데 모르니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교육이 없다 보니 판이 안 열리는 데 어떻게 난이도 높은 판소리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판소리꾼이 판소리의 대중화에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교육계로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판소리꾼이 이 시대에 맞는 판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용필 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있듯, ‘안숙선’ 하면, 뭔가가 떠올라야 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최근 <창판>이라는 창작 판소리가 많이 나옵니다만, 이것도 요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인공도 전라도 못 배운 농부가 등장하는 것이 일쑤입니다. 이러니 판소리가 대중화 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느닷없이 눈 대목이 나온 것 아닙니다. 사랑가가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이해해야 사랑가가 나옵니다. 이별가는 이별한 직후 부를 때 최고의 감정이 나옵니다. 판소리 사설은 문학을 잘 하는 분들이 만들었을 것입니다. 작곡에 천부적 소질을 가진 사람이 장단과 선율을 넣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소리꾼이 예술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이 떴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뜬 것입니다. 이렇듯 판소리 역시 모든 것을 판소리꾼이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극작가, 소설가, 수필가가 이 시대에 맞는 사설을 쓰고,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작곡가가 장단과 선율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그 위에 판소리꾼이 고고하게 걸어가고 달려야 판소리가 대중화됩니다.”
묻는 말에 분명한 소신으로 답변했다. 기승전결이 명료했다. 힘을 주어 말할 때는 힘주어 말했다. 대담 도중 전화가 걸려와 중단되면, ‘다시 이어서 말하겠습니다.’라며 매듭을 지었다. 동리 신재효와 진채선이 한 사람 돼 말하는 것 같았다. 질문 지팡이 끝에 질문 보따리를 묶어 던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소리꾼은 관객이 몰입하게 해야 합니다. 꾀를 부리면 안 됩니다.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대사 한 줄 없어도 눈빛하나로 관객과 통해야 합니다. 흡입력으로 소리를 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와 철학의 판소리꾼으로 성장하는 것이 첫 번째 계획입니다.
두 번째 계획은 일반인을 위한 국악교본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악 전공자 교육은 쉽습니다. 애기 때부터 백지상태에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별도의 교본이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일반인은 다릅니다. 국악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국악을 배웁니다. 그러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본이 없습니다. 진작 누군가 했어야 할 일입니다. 요즘 ‘나중 세대에 무엇을 물려줘야 하나?’를 생각합니다. 돈 보다 명예보다 더 소중한 것이 국악을 알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있는 국악 교본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국악 찬송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 종교가 개신교입니다. 교회를 갔더니 ‘국악을 싸구려로, 심지어 불교 음악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판소리는 전형적인 우리 것입니다. 불교음악이 아닙니다. 개신교가 들어오기 전 판소리는 만들어졌습니다. 어디 뭐 더러운 것 묻은 음악이 아닙니다.’라고.
찬송가를 살펴보니 우리식으로 만든 곡도 있지만, 대개가 서양 곡을 우리말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찬송가 중 우리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국악 찬송가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대담을 끝나니 중화참이 한참 지나있었다. 창밖엔 하얀 햇살을 받은 녹음방초가 말 그대로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흥타령 ‘빗소리도 님의 소리. 음 음 음. 바람 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님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님을 기다리건만, 고운님은 오지 않고 베게머리만 적시네’가 애타게 들려왔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