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익률 > 경제성장률' 동의에 모순 성립 안돼
[뉴스핌=노종빈 기자] 세계적인 경제학 소장파 석학들의 대결은 의외로 싱거웠다.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EHESS) 교수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2015 보스턴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소득 불평등의 원인과 해법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 준비되지 않은 두 사람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EHESS) 교수(왼쪽)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그래픽: 송유미 미술기자]
이날 두 사람의 대화는 무엇보다 먼저 경제학적으로 전혀 포커스가 맞지 않았다. 마치 링에 오르는 두 선수가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한 것처럼 약간 준비되지 않은 논쟁으로 보였다.
가장 먼저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메인 테마로 등장한 '자본이익률(r) > 경제성장률(g)'에 대한 논쟁이 제기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는 결론적으로 맨큐나 피케티나 다 인정하는 부분이어서 논쟁이 될 수 없었다.
피케티는 r이 g보다 커서 부의 세습이 심화되고 이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로 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자본이익률이 4~5%대로 낮은 편이고 경제성장률은 대략 3%대를 기록하는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에서도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피케티의 논리에 따르면 이 역시 속도는 느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회적 불평등 레벨은 물론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럴 경우 사회적 불평등은 r과 g의 격차의 변화속도(변화율)보다는 사회적 비리나 권력의 부도덕성, 관료주의와 무책임, 시장의 독과점과 정책실패 등 경제학 외적인 비리와 모순에 의해서 더 크게 강화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결국 피케티의 주장은 r>g 로 가는 속도성의 문제였고 맨큐의 주장은 'r>g 가 부정된다면 비효율적인 경제가 된다'는 것이었으나 두 가지 주장은 상호모순이 되지 않고 충분히 양립될 수 있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서로 비껴간 화살과 같은 양상이 됐다.
◆ 부유세냐? 소비세냐? 평이한 논란으로 귀결
결국 이날 맨큐와 피케티의 논쟁은 결국 부유세냐 소비세냐의 평이한 논쟁으로 귀결됐다.
피케티는 부의 세습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기 때문에 부유세를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방향은 맞을지 모르지만 세금으로 사회적 부를 재분배하겠다는 주장은 왠지 허탈감을 준다.
국가가 자본 세습을 막기 위해 부유세로 세금을 걷더라도 다시 권력이 원하는 대로 분배할 가능성이 높다. 또 세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관료와 결탁한 재벌이 다시 독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한 맨큐의 주장은 아무리 재벌이라도 먹고 살아가려면 소비를 해야 하므로 부유세보다는 소비세를 먼저 높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 역시 결론은 맞을지 몰라도 허술한 주장이다. 소비세를 높인다고 재벌들이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될 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쟁은 경제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다.
게다가 피케티가 주로 들여다본 프랑스 경제나 맨큐가 가정하고 있는 미국 경제 상황 역시 이 같은 논리를 서로 바꿔 적용하기에는 완전하지 못하고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다.
홈 그라운드의 문제도 있었다. AWA 학회에 참석한 피케티는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주류 경제학자들의 무리 속에 던져넣어진 것처럼 보였다.
◆ 흥미본위 이벤트성 행사로 결말
여기에 맨큐나 피케티나 모두 논리정연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주류 자본주의와 비주류 자본주의라는 양 진영을 이끌만한 대표선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두 사람은 특이하게도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세속적 인기를 얻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맨큐는 경제학 개론서로 미국 대학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며 가끔 유력 신문이나 칼럼 등을 통해 일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프랑스보다는 미국과 한국 등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고 이를 근거로 최근에는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종되뇌르의 서훈을 거부할 정도로 화제성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즉 이 두 사람은 학문적 업적에 비해 사회적 인기와 지명도가 훨씬 높은 인물들이라는 점은 확연하다.
결국 맨큐의 시각으로는 피케티의 주장은 경제학을 표방하면서 인기에 영합한 비판할 구석이 많은 논리에 불과하다. 피케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맨큐의 경제학 교과서를 꼼꼼히 따져가며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점에서 피케티와 맨큐의 논쟁은 이벤트 시장에서 섭외하기 쉬운 저자와의 대화나 토론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이벤트는 경제학의 문외한이 대부분인 청중이나 매스미디어에게는 한번 붙여볼만한 카드이자 흥미로운 일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른바 '세기의 대결'로 포장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고 아쉬운 점들이 다소 눈에 띠는 이벤트성 행사로 보였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