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이것이 있어 저 것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저 것도 없다.’ 인도의 석가족(釋迦族)에서 깨달은 성자(聖者)가 나왔다 해서 ‘석가모니 붇다’로 이름 붙여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다. 우주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이 인연으로 생(生)하고 멸(滅)한다.
개비(甲).
광대들의 은어(隱語)다. 핏줄로 광대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을 일컫는다. 아버지, 할아버지, 백부, 숙부, 고모 등 온 집안 혈육이 예능인으로 꽉 들어찼다는 뜻이다. 예능계에서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비개비(非甲).
말 그대로 ‘개비가 아니다.’는 뜻이다. 예능의 소질은 타고 났지만 개비 집안이 아니어서 그 계통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어야만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다.
영(靈).
감(感)으로 어떤 현상이나 다가 올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일컫는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점쟁이다. 무당은 점쟁이가 아니다. 무당은 몸속으로 들어온 신의 뜻을 육신을 빌어 대신 전달(이를 공수라고 한다.)할 뿐이다.
춘향가 사설에 이르기를 ‘경상도는 산세가 웅장하여 사람이 나면 강직하고, 전라도는 산세가 촉하여 사람이 나면 재주가 있고, 충청도는 산세가 순하여 사람이 나면 인정이 있다.’고 했다.
충북 청주 출신 인정 있는 비개비와 시절 인연이 닿았다. 몇 해 전부터 이 비개비의 공연을 가면 언제가 꼭 만날 것 같은 영(靈)이 발현했다. 이 비개비의 장구 치는 모습은 오랜 수행으로 인격이 정리 정돈된 고승의 풍모다.
장구(獐狗) 주자(奏者) 비개비 유인상이 약속장소인 용산구 남영동 식당으로 차를 몰고 나타났다. 유유(幽幽)한 얼굴빛에서 사람 향기가 났다. 가지런한 머리카락, 넓은 이마, 깊은 눈빛, 당당한 입술, 장단타는 권마성제(權馬聲制) 걸음걸이가 인상적이었다.
유인상은 충북 청주 출신이다. 청주의 명문고 세광고를 졸업한 후 서강대학교 불문과에 들어갔다. 대학 1학년 때 우연히 접하게 된 사물놀이가 인연이 돼 장구 실기 주자가 됐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됐다. ‘장구에 미쳤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대학생활을 했다.
전국을 돌며 우리 장단을 몸으로 담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 이리우도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임실 필봉농악,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진주 삼천포 농악, 경기무형문화재 제21호 안성남 사당 김기복 웃다리 풍물 등을 두루 섭렵했다. 현재는 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민족음악원 악장, 사물놀이 ‘판’ 대표, 중앙대, 대불대, 백석예대에 출강중이다.
그에게 왜 장구(노루장獐, 개구狗. 노루 가죽과 개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이 獐狗다. 그러나 요즘은 소가죽, 말가죽 아무거나 써 장고獐鼓라고도 한다.)를 선택했느냐고 질문했다.
“장구는 우리 음악 모두에 들어갑니다. 장단의 기본 악기입니다. 우리 악기의 가장 원초적, 원천적 악기입니다. 무궁무진한 우리의 장단을 장구가 가장 잘 표현합니다. 저하고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택했습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냅다 던졌다. “많은 국악 공연을 보았지만, 유인상 씨처럼 장구 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분을 못 보았습니다. 손으로 장구를 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장구를 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장구를 칩니까?”
“장구를 치다보면, 삶속의 순환을 느낍니다. 장단은 무궁무진합니다. 장단에 변형을 많이 주다보면 본질이 흐려집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장구 장단도 인생과 같습니다. 연륜이 있어야 장단이 익습니다. 삶의 깊은 수렁을 딛고 일어섰을 때 장단이 깊게 울립니다. 한 때 인생 막장까지 떨어져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것을 딛고 일어서니 장단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뼛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변형보다는 기본 꼴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잔재주보다는 맑게 텅 빈 마음으로 장구 장단을 바라보며 칩니다. 그러면 장구 장단이 더 깊어집니다. 장구 장단은 장구 장단답게, 판소리 장단은 판소리 장단답게 칠 때 온전한 장구소리가 됩니다.
무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조금 못해도, 조금 부족해도 있는 그대로 할 때 관객에게 감동이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넘치면 감동이 없습니다.”
차분하게, 또박 또박 자신의 철학을 말했다. 이순(耳順)은 넘어야 갖출 수 있는 연륜의 내공이 젊은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의 말끝에 질문을 매달아 팔매질 하듯 물었다. “국악의 대중화가 화두입니다. 제가 최근 어느 군부대에 국악 공연을 갔더니 그 부대 장교가 ‘오늘 공연 때 귀신 이야기나 무당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하는 겁니다. 국악의 대중화 어떻게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국악의 대중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대중화 현상은 아닌지 돌아 볼 여지가 있습니다.
국악 실기를 하는 사람들이 항상 고민에 빠지는 부분이 대중성과 예술성 중 어느 것을 우선해야 하는 겁니다. 저는 대중성이 없는 것은 예술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즐겁고, 관객이 재미있어 해야 예술성도 살아납니다. 따라서 국악을 너무 어렵게 풀면 대중성은 멀어집니다. 쉽게 해야 합니다.
국악을 대중화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국악 대중 스타를 만드는 겁니다. 국악 예술인에 더하여 대중가요 스타를 국악 스타로 개조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과 극은 통합니다. 가장 전통다운 것은 가장 진보적인 것과 통합니다. 요즘 퓨전 국악이 나름대로 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퓨전국악은 된장에 소스를 푼 맛입니다. 된장 맛도 아니고, 소스 맛도 아닌 역겹게 이상한 맛이 돼 버렸습니다.
본질을 지키는 변화 발전이 필요합니다. 법고창신(法古創新) 해야 합니다. 법고창신 하여 성공한 대표적 국악 장르가 사물놀이입니다. 가장 전통다운 본질의 꼴을 갖고 시대 흐름에 맞는 국악 창조를 해야 국악의 대중화는 앞 당겨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풀어가는 그는 국악 실기 인이 아닌 예리한 필봉을 자랑하는 논객 같았다. 시계가 예정된 인터뷰 시간 끝을 향해 재깍 재깍 달음질 쳤다. 마지막 질문을 숨 가쁘게 던졌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유인상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제 음악은 조금 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가장 전통다운 국악입니다. 많은 국악 선배님들 중에는 50이 넘으면 돈, 제자, 대학교수 상(相)에 함몰돼 현실에 안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비개비 출신이지만 영원한 국악 실기 인으로 살 작정입니다. 그것이 제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돈 보다도 장구 치며 제 몸속에 우리 장단을 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저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짧았지만 치열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중화참이 한 참 지난 시각이었다. 창문 너머로 남산의 신록이 성화를 부리고 있었다. 그런 신록 속으로 장구 속에 든 시간을 꺼내 밟고 총총히 걸어가는 유인상의 뒷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국악 미래가 보였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