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면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며 사진을 찍어댄다. 돈 드는 것도 아니니 무한정 찍어댄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그 사진을 보면 ‘여기가 어디지?’ 한다. 감흥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없다. 내 생각은 없다. 사진기는 내 기억을 갈아서 부셔버리는 맷돌에 불과하다.
사진기는 우리의 영감을 가차 없이 갈아엎는 중장비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맘에 드는 경관이 있으면 잠시 멈춰 숨 한번 들이마시고 경관을 가슴속에 담는다. 눈을 감고 그 경관을 안는다. 경관에 내 생각을 박는다. 생각이 메아리 돼 되돌아온다. 그러면 뇌 속에 저장된 어떤 영감이 언제든지 누에가 실 뽑듯 뽑혀져 나온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연연(姸姸)한 자드락길이었다. 길 위엔 하얀 달빛이 소담하게 쏟아져 내렸다. 사진 찍기를 그만 두었다. 사진을 찍으면 하얀 달빛영혼이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연연(姸姸)한 길 위에 내 생각을 박았다. 하얀 달빛에 내 영감을 불어 넣었다.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 호는 월성(月城)이었다. 달을 좋아 하셨던가 보다. 키가 훤칠하고 잘 생기신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아버지가 붓을 들으셨다. 생전처럼 단정하게 앉으셔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여 쓰셨다. ‘상문군청평세계(相文君淸平世界).’ 나도 먹을 갈았다. 붓에 먹물을 흠뻑 묻혔다. 호흡을 크게 했다. 화선지에 붓을 댔다. ‘국방국악문화진흥회(國防國樂文化振興會)’. 아버지가 웃으시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곤 이승을 떠날 때 꿈속에 나타나셨던 것처럼 홀연히 사라지셨다.
천왕봉(天王峰)에 오르니 구름이 일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혔다. 가슴속에서 소원을 꺼냈다. 깃발을 꽂고 소원을 매달았다. 여명(黎明)의 바람에 소원이 흩날렸다. 소원이 용(龍)이 돼 구름 타고 승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은 해(日)만 떠오르면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를 뱉으며 승천할 것이다. 진한 우윳빛 구름 너머로 미세한 밝음이 번져왔다. 용은 머리를 흔들며 여의주를 잔뜩 움켜쥐고 눈을 부라렸다. 용이 꼬리치기를 했다. 지리산이 흔들렸다.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였다.
용 뿔을 잡고 용 등에 올라탔다.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네 태몽은 용꿈이었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붉은 것을 토해 냈다. 내가 그것을 치마폭에 담았다. 그리곤 너를 잉태했다.’ 엄마의 태몽처럼 용을 타고 승천하는 일만 남았다. 구름이 바람에 쓸려갔다. 순간 홍시색깔을 띤 해가 쑤욱 올랐다. 용은 나를 태우고 태초의 현천(玄天)을 깨트리는 소리를 내며 우주선이 하늘로 올라가듯 힘차게 올랐다.
용(龍)까지 담은 배낭은 머리 위로 두 뼘이나 올라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내려가는 길이니 배낭 무게가 한결 가벼워야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오히려 더 무거웠다. 지팡이를 조심스럽게 짚으며 중산리 방향으로 지리산 종주 끝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배낭 속에서 용(龍) 놈이 계속해서 꿈틀대니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산 길은 오직 내리막 계단으로 돼 있었다. 오른쪽 다리가 점점 더 아파왔다. 어쩌다 평지가 나오면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용을 꺼내 무위(無爲)로 돌려보낼까도 생각했지만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영 놓아 주질 않았다. 너덜바위가 나왔다. 배낭을 풀고 앉았다. 배가 고파왔다. 사과 한 개를 꺼내 베어 물었다. 용(龍)놈도 배가 고팠는지 제 놈도 사과 한입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배낭끈을 푸는 순간 용(龍)놈이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배낭끈을 더욱 죄었다.
손전화가 울렸다.
“이번 주 목요일 오전 시간 가능하십니까?
“무조건 가능합니다.”
“그러면 그날 10시 30분 미디어 디지털 역 DMC 건물에서 뵙겠습니다.”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가능하십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필요한 서류는 멜로 보낼 테니 준비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배낭 속에 있는 용(龍) 놈의 신출귀몰하는 재주의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앞서 간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일단 저지르고 지리산을 찾았다. 어떤 이는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고 염려했다. 어떤 이는 좀 더 여유 있게 일을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이런 충고를 무시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열정과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서두름과 열정은 전혀 다르다. 차라리 몰아 부치는 것은 열정과 통한다.
열정은 최선을 다한 결과 스스로 한 일에 대해 감동하는 것이다. 정성은 열정을 바쳐 최선을 다한 후 그 일이 뜻대로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일을 저지르고, 지리산에서 소원성취 기도까지 했으니 열정과 정성의 충분조건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니 산행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소원 성취의 낌새가 생기는 것 아니겠는가!
중산리는 평온했다. 감나무엔 주황색 감이 가지가 찢어지게 달려있었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기사식당으로 들어갔다. 순두부찌개에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뽀얀 거품이 일게 맥주를 따랐다. 단 숨에 들이켰다. 꿈이 식도를 타고 넘어 갔다. 희망이 오장육부를 향해 질주했다. 정신이 몽롱해 질 때 즈음 누가 어깨를 툭 쳤다.
오래된 친구였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나를 구례구역까지 바래다 주기위해 구례에서 또 발품 팔아 온 것이었다. 오래된 친구 차에 올라 탔다. 가을이 소담하게 내려앉은 섬진강 길을 따라 달렸다.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친구는 운전을 하면서 연신 담배를 물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담배 연기가 나가고 대신 가을 향기가 들어왔다.
그 친구가 불쑥 말을 건넸다.
“너 많이 비우고 내려왔니? 비워야 서울 가서 또 채우지.”
“비우기는커녕 없는 것도 만들어서 채우고 내려왔다.”
“병신 같은 놈. 이번에 비우지 못하면 영영 못 비워 이놈아. 죽을 때도 못 비워. 뜨끔한 불덩이가 가슴을 지지는 죽음의 고통이 와도 넌 또 다른 욕심을 빌 거야. 너처럼 욕심 많은 놈은 무간지옥에 떨어져 봐야 비운다니까.”
“나 욕심 없어. 다만 희망과 미래의 행복만 배낭에 담고 왔어. 욕심과 희망의 목표는 다른 거야. 희망의 목표가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이야. 이렇게 육신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희망의 목표마저 버릴 수 있냐? 이 속 빈 놈아.”
“육시를 할 놈. 말장난 그만해 임 마. 넌 평생 말장난만 하다 떠날래?”
결론 없는 말싸움 끝에 차는 어느 덧 지리산 온천 주차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주차장은 썰렁했다.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만 간혹 보였다. 분명 중국인 관광객은 아닌데 우리 풍습에 왠지 어색한 중국인 관광객처럼 보였다. 딸은 나에게 ‘아빠는 제발 등산할 때를 제외하고는 등산복을 입지 마세요. 등산복 입고 저자거리를 돌아다니면 남 의식하지 않는 무식한 중국인처럼 보여요.’라고 했다. ‘그럼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 중국인 관광객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용(龍)놈을 배낭 속에 단단히 잡아 매 놓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목욕 도중 비누로 씻어내는 때와 함께 소원도 씻겨 나갈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따뜻한 물에 알몸을 들이밀었다. 발바닥이 편안해졌다. 어깨가 문적문적 풀렸다. 오른쪽 장단지가 허물해지면서 통증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버드나무처럼 낭창댔다.
목이 죽순처럼 솟았다. 성욕을 느낄 때처럼 입술에 피가 고였다. 혀 끝에 단맛이 와 닿았다. 코 구멍에 김이 들어가자 코뚜레 뚫은 황소처럼 큼큼댔다. 눈은 진눈개비 오는 날 차장을 닦은 것처럼 말갛게 걸레질 돼 갔다. 귀는 당나귀처럼 목욕탕 안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쓸어 담았다. 눈을 감았다. 성삼재, 노고단, 돼지령, 임걸령, 삼도봉, 화개재, 연하천, 벽소령, 세석평전, 촛대봉, 장터목, 천왕봉, 중산리가 피아골 연곡사 심우도(尋牛圖)처럼 펼쳐졌다.
오래된 친구와 소주 한 병과 삼겹살을 마주 놓고 앉았다. 춘향이와 이 도령이 오리정(五里亭)에서 정별(情別)하는 것처럼 눈을 마주봤다. 아무 말 없이 고기를 구웠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침묵을 깼다.
“주인아줌마 가까운 곳에 판소리하시는 분 없어요?
“모르겠는데요. 그런 분 몰라요.”
“아니 이곳이 동편제의 고향 구례 아닙니까? 송만갑 명창을 불러 올 수 없습니까?”
명창 송만갑이 용(龍)으로 변신해 있었다. 이미 70여 년 전에 죽은 송만갑이 업 따라 인연 따라 삼겹살과 소주를 차려 놓은 제사상에 용(龍)으로 변신해 와 있는 것이었다. 소주를 연거푸 들이마셨다. 속 뜰이 뜨뜻해졌다. 굵직한 통성의 송만갑 명창의 소리가 들려왔다. 송만갑 명창께 술을 따라 올렸다. 절을 했다. 내가 북채를 잡았다. 중모리를 장단을 쳐 올렸다.
송만갑 명창과 나는 또 다른 용(龍)과 용(龍) 등에 올라탄 용(龍) 꾼이 됐다. 오래된 친구 놈이 말없이 이런 나에게 손 흔들어 배웅했다. 용(龍)은 단숨에 용산역(龍山驛)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용(龍)이 똬리 틀고 살아갈 산(山)을 만난 것이었다. 용산역 광장엔 취타, 태평소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