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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여여(如如)한 벽소령과 세석평전

기사입력 : 2013년12월23일 08:14

최종수정 : 2013년12월23일 08:14

 

종주 둘째 날 아침 햇살이 묵은 한지에 투영되는 것처럼 희뿌연 하게 번져왔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온 몸이 뻑뻑했다. 맑은 샘물을 길어와 멸치,  다시마를 넣고 떡국을 끓였다. 뽀얀 김이 넘쳤다. 다시마 향이 입맛을 돌게 했다. 뜨끈한 국물과 부드러운 떡이 속으로 들어가니 핏속에 꽃이 피는 것 같이 화해졌다.
 
배낭을 짊어졌다. 어제보다 무게차이가 없었다. 몇 백 년은 묵음직한 주목나무 군락을 지났다. 호박돌이 뒹구는 산길 위로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가을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은 배낭이 내 육신덩어리 인양 새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천왕봉으로 난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르는가 싶으면 내리막 길 이고, 내리막 길 인가 싶으면 평지 길 이었다. 벽소령 입구 길은 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입구 같았다. 빗자루로 가지런하게 쓸어 놓은 것 같은 길을 애 띤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하얀 고무신을 신고 걸으면 거기가 극락일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너덜지대를 지나 안돌이를 안고 걷는 길은 턱 수염이 긴 비구 스님들이 게걸스럽게 걷기에 딱 좋은 길 이었다. 길의 마루에는 일주문 같은 바위가 양 옆에서 서로 마주보고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단풍나무가 하늘 거렸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은 입술이 요조한 보살님이었다.

평평한 너널바위에 걸 터 앉았다. 근육이 잘 단련된 흑마 등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멀리 산맥들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왼쪽을 보니 경상남도 함양 마천 땅이다. 오른 쪽을 보니 전라남도 구례 땅과 경상남도 하동 화개 땅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화개 땅 눈썹쯤에는 청학동 푸른 학이 두 날개를 쫙 벌이고 있었다. 청학동 너머에는 섬진강이 해금처럼 개다리 모양으로 묵묵하게 흐른다. 섬진강 너머에는 순천 백운산이 구름 위로 우뚝 솟아 거문고 술대처럼 섬진강을 금방이라도 청칠 태세다. 

눈을 돌리니 구례 땅 피아골이다. 피아골(稷田)은 오곡 중 하나인 ‘기장(직稷)을 많이 심었다 해서 유래된 말이다. 기장을 다른 말로 ‘피’라고 한다. ‘피’는 볏과의 한 해살이 풀로써 떡, 술, 엿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일부에서는 6.25 전쟁 때 이 곳 피아골에서 빨치산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을 퍼트리고 있으나,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발음하기에 다소 거센 면이 있어서 붉은 피를 연상하기도 하나 이 또한 피아골이라는 명칭이 주는 매력이다. 피아골이 발음 따라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벽소령에 도착했다. 벽소령(碧霄嶺)은 지리산 달빛이 하얗다 못해 푸르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은 하늘(玄天)은 현묘한 하늘이다. 이 현묘한 하늘 가운데 떠 있는 달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하얗다. 무위(無爲)의 자연이기 때문에 그렇다. 현묘한 푸른 달빛! 말만 들어도 나처럼 음(陰) 기운이 강한 사람은 가슴이 덜렁덜렁 뛰는 이름이다.

냄비를 꺼내 차를 다렸다. 입안에 은은한 차향이 배었다. 입술을 적혔다.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겼다. 허공을 타고 인연 소식이 전해왔다. 인연은 업 따라 온다. 업은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낳고 죽기를 끝없이 반복하며 지은 업이다. 어머님 아버님이 사랑해서 나를 낳은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업을 따르고, 부모님이 부모님 업을 따른 것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인연 맺은 모든 것들은 서로의 업이 맞아 떨어질 때 맺어진다.

마누라가 생각났다. 부부는 기막힌 업의 인연이다. 이 세상에 와서 맺어진 부부인연은 어떤 인연보다도 그 작용력이 크다. 그래서 잘 닦고 잘 관리해야 한다. 다음 생에서 서로에게 더 좋은 인연의 생명을 받도록 서로가 사랑해 줘야 한다. 아들이 떠올랐다. 짓궂은 놈이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늘 나 보다 더 세상을 산 것처럼 떠들어 대는 그 놈이 대견스럽다. 딸년의 웃음이 보였다. 다소 쌀쌀 맞기는 해도 그래도 고년이 있어 내 맘이 즐겁다. 가슴으로 그윽한 가을 향기가 들어왔다.

오른쪽 다리가 내리막길에서 걷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팡이에 의지에 걸었다. 세석평전이 보였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잔 돌이 많은 밭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석의 철쭉은 지리산 8경 중 하나다. 봄이 아닌 가을인 관계로 철쭉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민둥산 등선이 편하게 다가왔다. 뚱한 등선엔 갈대들이 하늘거렸다. 세석이 평지로 보이지만 눈 아래로 까마귀들이 날았다.

세석평전에 뭉개고 앉아 보니 산들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북한산은 요요(姚姚)한 여고생 같다. 설악산은 요조(窈窕)한 신입 여사원 같다. 한라산은 연연(姸姸)한 기생 같다. 오대산은 국어를 잘하는 여대생 같다. 계방산은 지혜로운 새색시 같다. 지리산은 엄마의 젖을 잡고 잠든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그윽하다. 지리산은 묵묵한 부처님의 마음 같다. 지리산은 사천왕처럼 무섭다. 지리산은 굿판의 만신 모습이다. 지리산은 꾀죄죄한 내 가슴과 머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산(靈山)이다.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채우고 세석대피소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촛대봉에 올랐다. 천왕봉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다. 가슴이 둥둥거렸다. 배낭을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천왕봉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폐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햇살이 등 뒤로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소원을 빌었다. “천왕봉 보살님. 천왕봉 보살님. 제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속 뜰이 희망으로 꽉 차 올랐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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