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문화·연예 대중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연하천에서 삼킨 달

기사입력 : 2013년12월16일 08:00

최종수정 : 2013년12월13일 16:33

 

떠내려가는 마음들이 다시 나를 따라 오기 전에 서둘러 노고단 고개를 떠났다. 돼지령으로 들어섰다. 돼지령은 멧돼지가 많이 출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원추리뿌리와 둥굴레뿌리가 많다고 한다. 돼지라는 말에서 만만하고 친근감을 느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이처럼 먹을거리로 이름이 지어진 땅은 없다. 

돼지령이란 말과 어울리지 않게 산길은 그윽하기 그지없다. 걸으면서 삼겹살에 소주가 생각났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반 숟가락 분량의 밥과 마늘, 파, 된장을 상추에 싸 왼 손에 든 다음, 오른 손에 든 소주 한잔을 쪼오옥 마신 후, 입안이 미어터지게 밀어 넣어 꼭꼭 씹어 먹는 것을 상상하니 배가 고파왔다.

배고픔을 달래며 휘파람 불며 걷다 보니 임걸령(林傑嶺)에 이르렀다. 펑퍼짐한 곳에 따뜻한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임걸령(林傑嶺)은 조선조 선조 때 산사람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임걸년은 지리산 일대 사찰을 터는 도적이었다 하며, 화개장터까지 진출해 보부상들의 털었다 한다. 

도적의 이름을 따서 그런지 임걸령에 오르면 산도적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으로 고개 마루가 만들어져 있고 약수 물도 풍부했다. 수통을 비우고 임걸령 약수 물로 다시 채웠다. 비우고 채운다는 것은 새로움이다. 새로움은 창조다. 물은 비우고 채웠지만 마음은 비우지도 못했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지도 못했다. 오히려 노고단에서 떠내려 보낸 망상의 마음들이 다시 뛰 따라 와 있었다.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으며 임걸령 바위에 걸터앉아 사과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달콤했다. 사탕도 한 개 먹었다. 역시 달콤했다. 인생이 달콤한 것 같았다.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억새와 단풍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렸다. 휴영(虧盈)이란 말이 떠올랐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오른다는 말이다. 아직 차지도 않았으니 기울 것도 없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이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찰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만족스럽게 주머니에 찰 것 같지도 않다. 명예가 멋들어지게 차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작은 권력이나마 이미 떠나갔으니 차기도 전에 기울었다. 그냥 맹물에 돌 삶은 것 같은 매∼애∼앵한 인생을 살다 이 세상 소풍 끝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똬리 튼 욕심이 불끈 솟았다. ‘남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못해. 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하며 욕심에 불쏘시개를 넣었다. 욕심이 잉걸불이 돼 타올랐다. 지리산을 잡아먹을 기세로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훨훨 타 올랐다. 임걸령에서 시작한 불은 걸어온 돼지령 길을 따라 노고단으로 번져갔다. 가을빛이 검게 그을려지고 있었다.

임걸령을 떠나는 육신의 무게 무거웠다. 사과도 먹고, 오이도 먹었지만, 욕심으로 가득 찬 배낭 무게는 오히려 더 나가는 것 같았다. 헉헉대며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노루목에 도착했다. 노루가 다니는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 노루가 다니기 좋게 생겼다. 길의 모양도 노루목처럼 생겼다. 노루가 사슴과 비슷하게 생겨서 그랬는지 노천명의 ‘사슴’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의 유부남과의 뜨거웠던 첫사랑에 대한 절제된 감정이 이 시에 오롯이 담겨있다. 모가지가 슬픈 짐승은 노천명 자신이고, 가질 수 없는 유부남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이 물속의 제 그림자다. 유부남이 창가에 다가와 자신을 불러 줄 것 같은 상념에 젖은 눈빛으로 먼 데 산 즉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유부남을 그리워하는 시가 또 한 편 있다.

서리 내린
지붕 지붕엔 밤이 안고

그 안엔 꽃다운 꿈이 뒹굴고
뉘 집인가 창이 불빛을 한 입 물었다.

입속으로 노천명의 시를 웅얼거렸다. 가슴속에 가두어 놓은 애련(愛戀)이 가을 햇살 사이로 꿈틀댔다. 전화선을 타고 오던 슬픈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온갖 망상을 다시 배낭에 담고 해가 한 뼘쯤 남은 시각에 연하천(烟霞川) 대피소에 도착했다. 연하천(烟霞川)은 ‘구름 속에 물줄기가 연기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그 만큼 산마루 가까운 곳에 늪같이 습기가 많다는 뜻이다. 아마도 지세의 모양과 기운을 보고 이름을 지은 곳 중에서 이 곳 연하천(烟霞川) 만큼 아름다운 이름도 없을 것 같았다.

대피소 앞 샘에서 맑고 시원한 물이 흘렀다. 마시면 속 내장이 깨끗해 질 것 같았다. 한 바가지 물을 떠 마셨다. 더럽혀진 속 때가 씻어 지는 것 같았다. 라면으로 이른 저녁을 해 먹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대피소 측에서 배정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삐걱대는 낡은 목 침상에 침낭을 깔고 누웠다. 함께 투숙한 산 꾼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인해 잠을 잘 수 없었다. 땀 냄새, 파스 냄새, 음식 냄새 등이 섞여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밖으로 나왔다. 달이 떠 있었다. 구름에 가렸다가는 나오고 가렸다가는 나오기를 반복했다. 하늘은 마치 동해바다처럼 검푸르렀다. 사진기를 꺼내어 달을 찍었다. 조명 밝기가 맞지 않는지 찍히지 않았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할퀴고 지나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집중해 소설 ‘혼 불’의 ‘춘복이’처럼 달을 삼켜야 했다. 내 꿈을 이루어 달라고 내 뱃속에 들어간 월광보살에게 소원을 빌어야 했다. 입을 크게 벌렸다. 훅하고 달을 향해 공기를 들어 마셨다. 차가운 바람이 입 안 가득 들어왔다. 

속으로 말했다. “월광보살님. 월광보살님. 제발 이번에 하는 일이 반드시 성사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월광보살님. 월광보살님. 십 년 후에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머릿속과 뱃속이 소망 덩어리로 가득 차  올랐다. 트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덩어리 덩어리들로 내장을 채우고 다시 삐거덕 거리는 침상으로 들어와 누웠다. 귀전에 아쟁소리가 징징댔다. 파란 밤이 하얗게 새가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尹 지지율, 2.6%p 오른 32.7% …김건희 논란 사과 긍정 영향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30%대 초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6일 발표됐다.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해 사과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종합뉴스통신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13~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32.7%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65.0%로 나타났다. '잘 모름'에 답한 비율은 2.3%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처음으로 사과하는 등 자세를 낮췄지만, 지지율은 2.6%p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부정평가는 1.7%p 하락했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간 격차는 32.3%포인트(p)다. 연령별로 보면 40대에서 긍·부정 평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만 18세~29세에서 '잘함'은 29.3% '잘 못함' 68.7%였고, 30대에서는 '잘함' 31.5% '잘 못함' 65.9%였다. 40대는 '잘함' 25.6% '잘 못함' 73.2%, 50대는 '잘함' 26.9% '잘 못함' 71.8%로 집계됐다. 60대는 '잘함' 34.9% '잘 못함' 62.5%였고, 70대 이상에서는 '잘함'이 51.8%로 '잘 못함'(43.7%)보다 높게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서울 '잘함' 27.8%, '잘 못함'은 70.8%로 집계됐다. 경기·인천 '잘함' 32.6% '잘 못함' 65.9%, 대전·충청·세종 '잘함' 36.0% '잘 못함' 61.0%, 부산·울산·경남 '잘함' 40.3% '잘 못함' 58.0%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은 '잘함' 43.8% '잘 못함' 51.7%, 전남·광주·전북 '잘함' 16.0% '잘 못함' 82.2%로 나타났다. 강원·제주는 '잘함' 31.6% '잘 못함' 60.1%로 집계됐다. 성별로도 남녀 모두 부정평가가 우세했다. 남성은 '잘함' 28.8% '잘 못함' 68.9%, 여성은 '잘함' 36.5% '잘 못함' 61.3%였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 배경에 대해 "취임 2주년 기자회견과 김건희 여사 의혹 사과 이후 소폭 반등 했다"면서도 "향후 채상병 및 김 여사 특검, 의대정원 문제, 민생경제 등 현안에 대해 어떻게 풀어갈지에 따라 지지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영수회담, 기자회견, 김 여사 논란 사과 등으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했다"면서도 "보여주기식 소통이 아니라 국정운영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지지율은 상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할당 추출 방식으로 추출된 표본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2.8%,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통계보정은 2024년 1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 값을 부여(셀가중)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parksj@newspim.com 2024-05-16 06:00
사진
의대 증원 항고심 결정 초읽기…정부 의료개혁 분수령 [세종=뉴스핌] 신도경 기자 = 법원이 16일 정부의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 집행정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1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 배상원·최다은 고법판사)는 전공의와 교수가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정책을 멈춰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결론을 16일 또는 17일 내릴 전망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법원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 인용 여부에 따라 2025학년 2000명 의대 증원 정책 추진 여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한덕수 국무총리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2024.05.13 yooksa@newspim.com 이번 항고심의 쟁점은 '원고 적격성'이다. 1심은 의대 증원 처분의 직접적 상대방은 의대를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며 항고심을 제기한 의대생은 정부 정책에 다툴 자격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반면 2심은 '원고 적격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법원은 정부에 5월 중순까지 대학별 모집인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라며 정부가 결정한 2025학년도 증원 규모에 대한 근거 자료를 요구했다. 정부는 지난 10일 법원의 요청에 따라 의대 증원 결정에 대한 근거 자료 47개와 2개 참고 자료를 냈다. 의대 증원을 논의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보정심) 회의록,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을 제출했다. 반면 의료현안협의체와 의대정원배정위원회는 보정심과 의사인력전문위원회와 달리 '법정 협의체'가 아니라 회의록 기록 의무가 없다. 정부는 회의 결과를 정리한 문서와 관련 보도자료를 함께 제출했다. 법원은 정부의 자료를 근거로 2025학년도 2000명 증원 규모에 대한 객관성과 절차적 정당성 여부 등을 검토한다. 정부의 바람대로 법원이 각하 혹은 기각(원고의 소에 의한 청구나 상소인의 상소에 의한 불복신청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배척하는 판결) 결정을 내리면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은 객관성을 인정받아 예정대로 추진된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다면 2025학년도 2000명 증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법원 재항고, 본안소송 등 추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재항고 소요 기간을 감안하면 대학별 입시요강이 확정 공시되는 이달 말까지 결론이 나오긴 힘들기 때문이다. 입시 일정 또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법원의 결론에 따른 의료계의 복귀 여부도 주목된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15일 법원이 의대 정원 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진료 정상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인용 결정)이 않기를 희망하고 그렇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인용 결정이 나면 즉시 항고해 대법원판결을 신속히 구하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dk1991@newspim.com 2024-05-16 06:0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