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은 ‘해원의 굿 삶의 예술’ 학술 세미나였다. 굿, 무당 분야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이보형 한국고음반연구회 교수, 김혜정 경인교육대 교수, 박흥주 경희대 교수, 이용식 전남대학교 교수, 김기형 고려대학교 교수, 최 헌 부산대학교 교수, 나경수 전남대학교 교수, 홍태환 중앙대학교 교수, 송혜진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등의 열띤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발표 내용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이 여행기의 머리말에서 제기한 굿 소요의 감소에 따른 무당들의 생계 문제였다. 이제는 전통 그대로의 굿으로는 무업을 이을 수 없다. 그래서 묘책으로 제시된 것 중 하나가 ‘애완견 씻김 굿’ 이었다. 요즘 사회는 이웃집 사람의 죽음보다 자신의 반려견(伴侶犬) 죽음을 더 슬퍼하고 애석해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새로운 굿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실 종교적 관점에서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 사람이라고 해서 미물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은 사람 중심의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모든 생명체는 동등하다는 우주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 주장도 그렇게 엉뚱한 생각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두 번째는 세습무도 강신무처럼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습무와 강신무를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혼재돼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문제 역시 무업의 생계문제와 직결돼 있다. 세습무도 점을 치고 푸닥거리를 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배출되는 이 시대에 세습무의 설 땅은 점점 더 좁아져 가고 있는 것이다. 세습무들의 높은 예술성의 민속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더 다듬어 지고, 더 멋진 전문 국악인들의 공연 때문에 세습무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참에 나는 주장하고 싶다. 국악인이 무업을 계승하는 것도 좋은 방안 중의 하나라고. 그리고 이러한 높은 수준의 굿을 외국인들을 상대로 관광 상품화 할 경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당들의 생활수준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산 자는 삶의 끝자리에 선 망자를 보내면서 망자의 이생에 대한 회한을 풀어주고 싶어 한다. 이 승과 저 승이 대문 하나를 두고 갈린다고 하지만, 그 갈림은 우주 끝에서 끝까지의 차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다시는 못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애닮은 마음을 무당을 불러 달래는 것이 굿이다. 귓가에 들려오는 신악(神樂)에 맞춰 산 자와 죽은 자는 그들의 원(寃 : 원통함)을 푼다. 그런 굿이, 그런 굿을 주관하는 무당이 변질, 변화돼 가는 현장을 뒤로하고 대흥사 일지암으로 초의선사를 만나러 떠나는 길이 마치 대문 하나를 두고 갈리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같았다. 햇살이 하얗게 쏟아지는 길을 달리는 마을버스 안에서 듣는 조용필의 ‘바운스’가 신악(神樂)처럼 들려왔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