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까맣게 내려앉은 땅 끝 바다 위 어둠을 바라보며 이틀간에 걸쳐 만나 본 다산 정약용과 고산 윤선도와의 인연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은 하나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 나투우는 순간부터 무수한 업(業)을 짓고, 그 업에 따른 보(報)로 만난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만남, 형제자매와의 만남, 학교에서의 은사 및 친구와의 만남, 사회에서의 이해관계를 맺는 만남, 이성과의 만남을 통한 부부의 인연 등 성격과 유형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만남을 만난다. 새로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늘 설레임을 동반한다. 이 설레임은 일종의 기대와 대리 만족일 수도 있으며, 내용에 따라서는 소망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번 다산과 고산과의 만남은 소망이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삶의 깊이 뿐 아니라, 마냥 잘 나갈 것만 같던 삶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 쳐 유배와 낙향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평상심을 유지하며 오히려 격을 한 차원 높게 끌어 올린 두 분의 풍류 있는 삶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땅 끝 황토빛 등대 밑에서 하늘이 휘도록 매달린 미리내 별들를 헤아리며 다산의 향기를 갈무리했고, 슈퍼마켓 파라솔 의자에 앉아 고산의 속살을 들여다 보며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웠다. 식도를 타고 싸하게 흐르던 맥주와 입안에서 너적너적 대며 짭쪼름했던 새우깡 맛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두고두고 펼쳐 보고 만져 볼 고산과 다산과의 추억여행을 더욱 감칠 맛 나게 해줬다.
이생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만나자고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해 만나지 못하는 인연으로 이생이 끝난다면, 250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어는 소설가의 말이 남도 여행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내 귓전을 계속 울렸다. 속 뜰에 북 소리가 둥둥 울렸다.
아침은 맑고 화사했다. 남도의 가을색이 제대로 번지고 있었다. 머물던 하얀집을 떠날 땐 마치 몇 십 년 살던 집을 떠나는 심정이었다. 내 인생의 한 쪽을 풍요롭게 쓸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 준 방문을 닫고 아침식사 장소에 들어서니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맛깔스럽게 차려진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걸죽한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이게 바로 '등따시고 배부르다.'는 말인가 싶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뭉턱뭉턱 지나가는 연한 개나리색 아침 햇살을 받은 남도 들녘은 평화로웠다. 고개를 잣바듬하게 제치고 옅은 선잠에 든 동반 답사 객들의 얼굴에도 남도 가을빛이 묵은 한지처럼 편안하게 슴배고 있었다. 길가 코스모스는 유행가 가사처럼 한들거렸다.
담양 소쇄원에 도착하니 해가 서석산(무등산의 또다른 이름) 귀밑말에 걸려있었다. 소쇄원은 정암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지은 원림으로서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위치해 있다. 지곡리 일대에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명옥헌이 냇물 좌우 언덕에 자리 잡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비껴보면서 풍류의 물감을 풀어 헤치고 있었다.
울울창창한 대 숲을 마치 미로 빠져 나가듯 밀고 나가니 초가(草家) 정자 ‘대붕대’가 우릴 맞이해 주었다. 시골 원두막 같은 정자였다. ‘대붕대’ 마룻바닥에 큰대자로 누워 간밤에 설친 잠을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음양 오행사상에 맞춰 건물을 배치한 소쇄원의 맛과 멋은 이런 것들이다. 흙돌담 밑으로 계곡물이 흐르도록 한 것. 양산보가 어린 시절에 미역을 감으며 뛰놀았다는 너럭바위 위로 폭포가 떨어지도록 한 것. 못을 이루는 중심 부분에 '광풍각'을 짓고, 그 위쪽 양지 바른 언덕 위에 사랑채와 서재를 겸한 '제월당'을 지어 처사(處士)의 기풍을 당당하게 한 것. 그리고 제월당 밑에 매화와 꽃가지를 심는 '매대(梅臺)'를 만들어 신선도 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광풍각(光風閣)과 제월당(濟月堂) 당호는 중국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의 인물됨을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도 같다.'고 평한 글귀에서 따온 말이다.
나의 작은 소망중 하나가 제월당 같은 정면 세 칸에 측면 한 칸짜리 고즈넉한 사랑채를 갖는 것이다. 그 곳에서 뜻 통하는 친구들과 삼현육각 치며 우리 소리 부르고
싶다. 소리하다 지겨우면 시 한 수 짓는 ‘글 풍류’도 하고 싶다. 소쇄원 대숲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대숲 바람에 소망의 꿈을 실어 보냈다.
남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답사 코스인 명옥헌에 들어서니 온 천지가 붉었다. 몇 백 년은 족히 돼 보이는 배롱나무 끝에서 포도송이 같은 꽃송이가 바람에 가녈가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풍광을 눈앞에 두고 명옥헌 누마루에 올랐다. 남도의 가을빛, 다산의 형형한 학문, 땅 끝 바다위에 무수히 떨어지던 꽃가루 같던 별빛, 고산의 풍류, 녹우당 종손의 너그러움, 제월당 품은 뜻이 고음반에서 들려오는 노래 가락처럼 울려왔다. 가을이 또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더질 더질 돌돌(咄咄)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