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는 하산 중이다. 이들은 평생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올라왔다. 힘들면 시원한 냉수를 한껏 마시며 땀의 보상을 받고 차근차근 꼭대기로 향했다. 큰 무리까지 지으며 그렇게 올라갔다. 정상경치는 멋지다. 그런데 이젠 내려갈 때다. 정상에 올랐으니 당연하다. 다만 하산길이 만만찮고 길어졌다. 와중에 밑에선 자녀세대가 열심히 올라온다. 사람심리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각한 게 나를 업어 밑에까지 데려 달라는 요구다. 젊은이는 죽을 맛이다. 가뜩이나 등산길은 좁고 험해졌는데 약수조차 말라버려 쉴 곳조차 없다. 내려오는 선배들로 길까지 붐빈다. 업어주고 다시 올라가는 상상만으로 피곤하다. 제 한 몸 오르기도 힘든 판에 아예 포기할까 싶다. 산 밑에서 어정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참에 등산거부다."
저성장·고령화의 선두인 일본에선 요즘 하산(下山)론이 화제다.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寛之)의 『하산의 사상(下山の思想)』이란 책이 불을 지폈다(幻冬舎․2011년).
세대대결로 확장되면서 오르는 쪽(청년세대)과 내려오는 쪽(노인세대)의 첨예한 입장충돌이 한창이다.
저자가 제공한 갑론을박 포인트는 “하산그룹은 등산그룹에게 길을 터줘라!”는 주문에서 시작한다. 자녀세대는 “옳소!”요, 부모세대는 “쩝…”인 게 지금까지의 대략흐름이다. “업어 달라!”는 노인과 “비켜 달라!”는 청년의 날 선 갈등은 나날이 증폭 중이다.
한정자원을 둘러싼 세대갈등을 이처럼 잘 비유하기도 쉽잖다. 그래서 인구회자 중인가 싶다. 표현은 에둘렀지만 내용은 심각하다. 세대대결은 그만큼 살벌하고 격정적이다.
만만찮게 봐선 갈등을 넘어 전쟁으로 비화될 날도 멀지 않았다. 다들 처음 겪는 일이라 감각이 없어 더 큰 문제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으로 후세대에 미뤄선 곤란하다. 그러면 사회는 부지불식간 끝장난다.
저자의 해법은 간단·명쾌하다. “하산비용은 스스로 마련하라”다. 길을 터주며 스스로 내려오라는 메시지다. 기를 쓰도 오르기 힘든 이들에게 업어서 내려준 후 다시 올라가라는 주문은 세대전체의 공멸을 의미할 뿐이다.
자녀세대가 아예 등산을 거부하면 고령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청년세대는 부모세대의 짓눌림에 허덕거린다. 기성세대가 만들고 즐긴 각종결정의 뒤처리까지 도맡아야 할 신세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정상부근엔 상상만으로 부담스런 거대군집이 하산을 준비 중이다. 베이비부머다. 이들까지만 해도 늘 하산보다 등산파가 많았다. 그런데 인구감소로 이젠 내려오는 쪽이 더 많다. 사상최초다. 베이비부머의 대량등정과 대량하산이 그 고빗사위다.
내려올 때가 중요하다. 하산기술은 왕왕 목숨과도 직결된다. 비용도 많이 든다. 밥도 먹고 병도 치료해야 한다. 다양한 비용지출의 불가피성이다. 그러니 이들은 하산비용을 현역세대에게 떠넘기고 싶다.
본인들도 하산길이 길어진 만큼 곳간을 지키고픈 유인이 높다. 그래서 각종 안전장치를 선거참여로 만들어뒀다. 다양한 현역지원이 전제될 때 하산하겠다는 투다.
힘들어진 자녀까지 감안하면 꽤 이기적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야 내 자식에게만큼은 곳간을 물려줄 수 있다는 계산 탓이다. 아이러니다. “더 이상 길을 막지 말고 조용하고 정연하게 내려오라”라는 권유에 묵묵부답인 이유다.
때문에 “이젠 성장신화의 주문․맹신을 버리고 공존사회를 위해 배려하며 어른답게 행동하자”는 저자지적은 현재로선 마이동풍이다. 청년으로선 적어도 자녀세대를 방해하지만 않았으면 할 뿐이다.
한국도 이제 하산타이밍이다. 경제적으로는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고도성장 때처럼 가파른 성장곡선은 어렵다. 잘해야 ±2% 안팎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없던 파이를 새롭게 만들어내기란 여간 어렵잖다. 창업보다는 수성이라고 지켜내는 게 시급하다.
그렇다면 기존의 한정자원 배분전략은 수정필요에 맞닥뜨렸다. 하산기술의 적용이다. 가치중립․미래지향적인 자원배분이 필요하다. 반대로 치우친 쏠림배분은 경계대상이다.
실제 등산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중요하고 어렵다. 유명등산가조차 내려올 때 조난확률이 더 많다. 내려온다는 게 부정적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한 새로운 재출발을 원한다면 이제 나서야 할 때다.
세대이전을 위한 소득재분배가 상징사례다. 소득재분배는 중요한 시스템이다.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괜찮은 처방전이다. 전통적으로 현역세대가 은퇴세대를 부양하고자 고안됐다.
그런데 이게 최근엔 역차별적이다. 빈곤청년에게서 부자부모로의 재분배는 역(逆)분배나 다름없다. 새로운 불균형의 심화다. ‘부자→빈자’의 재배분배모델의 위기다. 이는 당연히 통용되기 어렵다. 거꾸로 넉넉한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자원을 나눠주는 게 옳다.
더 정확히는 부모에게 불이익을 재분배할 필요다. 이때 불이익은 돈을 비롯한 기회 등 총체적인 기득권의 양보․박탈이다. 다만 머릿수로 통하는 민주주의에선 실현이 힘들다. 방치하면 통증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미뤄선 곤란하다. 재분배를 포기하고 인기영합적인 단순정책만 덧대서는 적자국채만 쌓일 뿐이다. 결국 ‘대(大)증세․저(低)복지’의 비참한 미래로 연결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등산미션이 떨어진 후속세대에 전가된다.
현역세대를 기다리는 건 현재노인을 부담하는 증세와 본인들이 노인이 됐을 때 받을 저복지가 유력하다. 사회보장 개혁으로 적어나마 세대갈등을 치유하는 게 급선무다. 물론 타협은 힘들다. 재원이 많다면야 문제는 없지만 현실은 그렇잖다. 막대한 사회보장비는 국가재원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재분배는 필연적으로 무게중심의 이동을 의미한다. 어떤 세대를 버리고 어떤 세대를 택할지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 체감으로는 그렇게 비춰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셈법이 복잡한 이유다.
*프로필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
-일본 게이오(慶應)대 경제학부 방문교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한양대 국제(경제)학 박사
-한국경제TV ‘머니로드쇼 재테크 파노라마’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