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세연정 |
세연정(洗然亭). 자연을, 세상을 깨끗하게 씻는다는 뜻이 들어있는 원림(園林)이다. 원림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인위적인 것을 가미한 정원이다. 세연정엔 윤 고산의 풍류와 기개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골육조형(骨肉造形 : 암석과 산맥을 조화롭게 하는 것)과 음양 오행사상 대로 구조물을 배치한 것 하며, 1 : 1.4 비율의 담장 크기가 그렇고, 구부 구부하게 흐르도록 한 못 속의 물이 그랬다.
또한 방지원도(方池園島)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 제자 효종대왕을 상징하는 자미(紫微 : 배롱나무)나무를 심어 충절을 표시한 것에서 윤 고산 특유의 절개와 문학적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부용동(芙蓉洞). 부용(芙蓉)은 사전적 의미로는 연꽃의 한자어로서 연꽃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철학적인 뜻으로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윤고산은 이곳 서쪽에 살림집 낙서재(樂書齎)를 짓고, 동쪽엔 동천석실(同天石室)이라는 신선사상의 정자를 만들고 마을 이름을 부용동이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었다.
동천석실에서 부용동 마을을 내려 보면 실제로 이곳의 형세가 연꽃처럼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마을 중간엔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꽃 심을 만들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꽃 심 지역엔 농작물을 재배 하지 않는 등 수 백년을 성스럽게 관리해 오고 있다.
동천석실에 앉아 맞은편 산을 바라보며 윤 고산이 어떤 심정으로 어부사시사를 지었을까 궁구해 보았다. 목마를 때 물 찾듯이 참구해 봤지만 고산의 마음은 헤아려 지지 않고, 낙서재 뒤편 흙 기운이 동천석실 마당의 금기운(金氣運)을 토생금(土生金)하며 부용동 꽃 심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것만큼은 확연히 볼 수 있었다.
보길도를 떠나면서 한편으로 씁쓸한 맘을 달랠 수 없었다. 씁쓸하고 슬픈 이 마음은 완도군이 공무원 특유의 꽉 막힘, 식물인간적 예산집행 등 관료적 사고로 저지른 동천석실 옆 인공 정자 때문이다.
여행 후, 완도군청 문화관광과로 전화하여 관련사실을 물어보았다. "죄송합니다. 보길면사무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일을 벌여 놨습니다. 몇 번 시정권고 했으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조만간 철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사또 앞에서 죄상을 이실직고하는 고을 원님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서 측은함 마저 느꼈다. 공무원들의 딱한 행정을 또 보았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