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초당을 나와 땅 끝 마을에 도착하니 해거름이 됐다. 함경도 온성으로부터 서울이 이 천리 요, 서울로부터 해남 땅 끝이 천리이다. 그래서 삼천 리 금수강산이란 말이 나왔다. 백두대간을 거칠게 달려오다 노령·차령산맥 지나 꽃잎처럼 흩뿌려진 점점의 섬 앞에서 급정거 하며 생긴 책받침 변 꼭지 점 같은 곳에 땅 끝 전망대가 세워져 있었다.
뭍의 입장에서 보면 땅 끝이지만, 바다 입장에서 보면 땅의 시작인 곳에 마치 사찰의 일주문 불이(不二)처럼 끝과 시작이 동시에 공존했다. 전망대에 올라 지극한 마음으로 보길도를 바라보며, 정성스런 마음으로 진도를 바라보며, 다산 정약용을, 고산 윤선도를, 송강 정 철을 그렸다.
그 분들의 위대한 사상과 호연지기가 온 몸으로 전해져 왔다. 내 몸속으로 내 맘으로 들어오는 그 분들의 기운을 붓끝에 실어 휘갈겼다. 그리고 휘갈겨 쓴 시 한 수를 해님에게, 달님에게, 별님에게 여여한 맘으로 헌시했다.
빛 섬
땅 끝 남쪽
보길도, 노화도, 밀매도는
쪽빛 바다위에 태초부터
공(空) 없이 둥둥 떠 있다.
땅 끝 서쪽
진도 앞 낙조 받고
연연(姸姸)하게 빛나는 섬 하나
나의 태집되어 내 본성 안아 준다.
땅 끝 동쪽
두두물물의 기토(己土)와
무극의 경금(庚金)이 손잡으니
백두대간이 닫힘과 동시에
백두대간이 열린다.
땅 끝 북쪽
윤 고산이, 정 다산이, 정 송강이
사랑이다 사랑이다 하며
한량무로 축하해 준다.
땅 끝 중앙
삼태극이 풍장치며
깔아준 비단길 따라
빛섬의 골산(骨山)이
사랑가로 답한다.
다선(茶仙) 초의 선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이 배냇향이라고 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일체의 사물을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옹알이 트는 영아에게서 배냇향을 맡는다 했다. 내 마음은 그런 배냇향을 맡으며, 업 따라 인연 따라 내 인생의 배냇향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소리북 세마치장단에 맞춰 출렁이는 물결 따라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해원의 민살풀이 춤을 춰 나갔다.
춤판이 끝난 땅끝 바다 위엔 싸라기 별들이 꽃가루처럼 쏟아지고 있었고, 하얀 뜬 물 같은 은하수는 닻별과 개밥바라기를 안고 유유(幽幽)하게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한뉘의 이녁 사랑가였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