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우 동화선집(심상우 지음, 지식을 만드는 지식 펴냄, 226페이지, 1만 2천 원)
심상우 동화작가는 올해 나이 만으로 쉰 다섯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남한강이 주위에 흐르는 산골, 충북 충주시 소태면 야동(冶洞)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가에 따르면 ‘야동’이란 마을의 우리말 원래 이름은 ‘풀무골’이다. 우람한 느티나무들을 중심으로 집 주위에 나무들이 무성했고, 사시사철 새 소리가 멈추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베이비부머의 시작점이니 아마도 도란도란 살을 부대끼며 들로 산으로 뛰어다녔을 형제나 동네 꼬맹이들이 바글바글 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주로 ‘나무와 들풀, 새, 벌레, 바람’ 같은 자연으로부터 말을 듣고, 상상 속 순례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무작정 상상의 세계만을 걷지는 않는다. 역사와 지식이 그 안에서 부활한다. 상상 속에 공부가 있고, 공부 속에 상상이 있다. 마치 아주 유식한 할아버지가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자, 손녀에게 자신이 살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자연’과 버무려 잔잔히 들려주는 분위기다.
심상우 작가의 이야기 행진은 “사람은 주변의 모습을 담는다”며 개그맨이 꿈인 동수, 꿈을 위해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는 동수에게 아름다운 풀밭의 예쁜 벌레와 시궁창의 더러운 벌레를 빗대며 ‘아름다운 풀밭에서 잘 자라라’는 가르침을 남기며 떠나는 ‘봄꽃 선생님’과의 이별부터 시작한다.
거친 비바람과 가뭄, 병충해를 이겨내고서야 꿋꿋하게 피는 들풀을 보며 ‘왕따’를 물리치는 방법을 찾아낸다. 거만한 홍방울새의 나들이를 따라가면 화려한 겉모습만으로 친구를 판단하면 안되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제 치하 서대문 형무소의 ‘통곡의 미루나무’에는 환타지 사이를 뚫고 나오는 슬픈 우리의 역사가 있고, 사람이 된 느티나무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 진다’는 희망을 아이들에게 전한다.
‘웃음나무’의 웃음소리는 30년을 나무한 연구한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되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에게만 보이고 들린다. ‘물고기가 열리는 물고기 나무’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개미 노나’는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일(회자정리)은 언제든 일어나니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며 허망하게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줄기를 자르면 노란 즙이 나오는 애기똥풀, 붉은 즙이 나오는 피나물, 꽃과 눈을 마주치고 세번 이름을 외치면 꽃 속으로 들어가 고려시대 동자스님을 만나게 되는 동자꽃, 가문비나무 등등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 우리 산하의 벌레와 들풀들이 곳곳에서 살아난다.
충주시의 보호수인 상수리 나무는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 주는 마법의 나무로 둔갑한다. 그 와중에도 ‘상수리’가 이름으로 붙게 된 내력을 공부시킨다. 우리나라 자연뿐만 아니다.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서 사라져 버린 도도새와 도도나무 이야기를 빌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강조한다.
환상과 역사, 지식이 버무려진 심상우 동화선집,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베란다, 거실, 앞마당, 공원의 나무와 풀, 새들을 무심코 지나치기 보다 그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대화를 나누며 무한 상상력을 키우게 하기 딱 좋은 동화책이다.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