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벌어지는 마당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부르며 정동길을 걷는다. 정동극장 지나 장미 핀 언덕 위 제일교회 울타리를 끼고 돌다 덕수궁 돌담에 잠시 기대 옛 생각에 젖는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겨울, 논바닥에 불 피워 놓고 동네 친구들과 황색 야외전축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따라 발바닥에 물집 잡히도록 고고(go go) 춤을 췄던 기억.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통기타 잘 치는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서 고성방가 했던 추억. 이십대에 넘치는 기운을 어찌할 줄 몰라 만취상태에서 밤 새워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던 일. 삼십대에 룸 살롱에서 오부리(obbligato) 뿌리며 노래 불렀던 광기(狂氣). 그러다가 사십대 때는 소위 여섯 박자 ‘꽃발’ 찍는 지루박도 배웠다.
난분분(亂紛紛) 내리는 눈도 인연 따라 내릴 곳에만 내린다. 시절인연이라는 게 있다. 때가 돼야 만난다는 말이다. 지천명(知天命)이 돼 국악을 만났다. 중학교 때 고고(go go) 춤을 시작으로 떠돌던 풍류 ‘끼’가 한참을 돌고 돌아 우리의 전통 풍류와 만난 것이다. 문화 여행, 국악방송 청취, 풍류당(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국악 배움 터)에서의 국악 학습과 뒤풀이 대화, 전문인들의 공연 관람을 통해 풍류를 만난다.
이번 이야기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에서 개최된 연향(宴享)에 대한 소감. 민속극장, 정동극장, 한국문화의 집, 남산 국악당, 국립국악원 우면당 등 극장에 올려지는 완성도 높은 공연 정보. 인사동과 익선동 저자거리를 중심으로 요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성업 중인 국악 라이브 카페에 대한 소개 글이다.
라일락 향기가 가슴을 친다. 꽃잎 안은 잎사귀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낮술에 벌겋게 달아 오른 흥이 발아(發芽)돼 벼루에 가득 넘친다. 큰 붓에 먹물 듬뿍 묻혀 글자 하나 써 본다. 風流(풍류), 海墨書而不盡(해묵서이부진 : 바닷물을 먹물로 다 써 버려도 풍류에 대해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경회루 연향(宴享)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는 경복궁 경회루에서 임금이 국빈을 대접하는 잔치인 연향(宴享)을 매년 가을 2회에 걸쳐 개최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선발한 300여 명의 소수 인원만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데 경쟁률이 치열하다.
가을볕이 좋은 어느 날 오후 장독대에 정화수(井華水) 떠 놓고 소원을 빌던 어미의 심정으로 경복궁 경회루 연향(宴享) 공연 관람을 빌고 있었다. "삐이룽~" 손전화기에 문자가 떴다. "변상문님! 경회루 연향에 초대되셨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가을밤 공기가 차가울 것에 대비해 외투를 걸쳐 입고 경복궁으로 서둘러 갔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을 지나 근정전 앞에 섰다. 어도(御道)에서 바라본 근정전은창연(蒼然 : 푸르게 예스러움) 너머 싸이의 '말 춤'처럼 친근감 있는 역동성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걸어 경회루로 들어섰다. 경회루를 시공한 삼봉 정도전이, 경회루를 중창한 태종대왕과 성종대왕이, 경회루를 재건한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도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전하와 성신(誠臣:충성스런 신하)께 배후(拜后:임금께 인사드림)의 예로 인사올립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수 백 년의 세월을 순식(瞬息:눈 깜작할 사이)으로 응축해 만났다.
인사를 마치자, 경회루 연향(宴享)의 막이 올랐다. 연향은 경회루와 그 주변 경관을 무대로 활용한 실경(實景) 공연이었고, 총 2부로 구성돼 진행되었다. 제1부는, 경회루 건립을 축하하는 공연이었다. '처용무'를 시작으로 문무백관을 대동한 임금과 왕비의 행차가 이뤄지고 난 뒤에, 궁중 성악인 정가(正歌), 궁중 무용인 '가인전목단(街人剪牧丹)', 생황과 단소가 연주되었다.
제2부는, 흥선 대원군이 경회루를 270여 년 만에 재건한 후 베푸는 낙성연(落成宴)이었다. 집단 오고무(五鼓舞), 선상(船上) 판소리, 강강술래 순으로 진행됐다. 모든 것이 걸작이었고, 명품이었다. 실경(實景) 무대는 아마도 세계 최고였을 것이다. 우주의 생성원리를 경회루 크기로 압축한 시서화(詩書畵)요 풍류였다. 경회루 외딴섬에서 연주한 생황과 단소 소리는 억조창생의 숨소리였다. 국창 안숙선이 경회루 연못위에서 배를 타고 수궁가 수궁풍류를 부르는 장면은 '가(歌)가 가히 가연(嘉然 : 가장 아름다운 경지)'되는 순간이었다. 정가와 강강술래는 자연과 인간이, 임금과 백성이, 부귀와 빈천이 없는 '신명의 어울림 춤 굿'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심장의 떨림이 한참동안 맥놀이 됐다. 조선왕조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호흡을 하는 듯 했다. 광화문을 빠져 나오니 하얀 달빛이 세종로 위로 쏟아져 내리고, 사철가가 이명처럼 들려 왔다. 참 근사한 밤이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