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목수정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13년 2월 27일, 스테판 에셀은 조용히 두 세기에 걸친 투사이자 지성의 삶을 마감했고, 프랑스 시민들은 침묵에 빠졌다. 스테판 에셀은 1917년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3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그리고 히틀러와 추종자들의 광기가 뒤덮인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나치에 체포됐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2010년, 그가 세계 시민들을 향해 ‘분노하라’는 절규를 쏟아 내자 세계 시민들은 마침내 괴물과도 같은 금융자본에 맞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곳곳에서 대오를 형성했다.
그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분노의 시작이라고 한다. 또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거부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양심을 회복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현대 민주주의의 법 중 다수의 희생 아래 특권층의 특권을 보호하는 법, 시장이라는 괴물의 참을 수 없는 독재를 비판하는 것이 살아있는 양심이라고 한다. 아울러 양심 없는 과학, 인간을 소외시키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양심의 구체적인 형체는 ‘측은지심’이다. 맹자는 우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를 보면 무조건 건져 내 살리려는 마음, 그것이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스테판 에셀은 그런 측은지심마저도 열정이 있어야 생겨난다고 한다. 그에게 측은지심이란 ‘보잘 것 없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힘을 가진 자들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들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는 오로지 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법이 진보를 계속 할 때 가능한 일이다. 만약 법이 그들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마지막으로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의 힘’이다. 스테판 에셀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흩어지고, 움직이는 것은 지속된다”고 했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뚫는 자 흥한다”와 통한다.
지금 암울한 광기 혹은 탐욕의 바람이 바다 멀리서, 내륙의 호수 안에서 일어남을 알리는 물새의 끼룩거림이 감지되고 있다. 당장 그 바람의 근원을 잠재우지 않으면 그 바람은 마침내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지도 모른다. 그 바람을 막을 힘은 ‘진보하는 법, 멈추지 않는 진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30년 전, 어떤 어른께서 지성인들에게 던졌던 말이 새롭다.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 현명하고, 우리가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