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 고택 |
윤증 고택.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자는 명재이다. 중요민속자료 제 190호로서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3번지에 위치해 있다. 사랑방엔 높이 1.5미터,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 크기의 무대가 설치돼 있다. 양반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마루와는 다른, 풍류만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 놓은 풍류 전용 극장식 무대인 것이다.
사랑방 외 이 집의 특징은 ① 외부인이 중문(현재는 대문으로 사용)으로 들어오는 것을 대청마루에서 볼 수 있도록 돼 있고 ② 안방에서 쪽문을 통해 사랑방을 은근하게 바라 볼 수 있으며 ③ 방방이 난 창문을 통해 바라 보는 외곽 풍경이 시서화(詩書畵)를 즐기기에 최적이라는 점이다. 윤증 고택은 한마디로 한량들이 제대로 된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택에서 옛 조상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풍류를 즐기는 호접몽(胡蝶夢)을 누렸다. 21세기 초기에 18세기 초기의 인류로 되돌아갔다. 선비는 시를 짓고, 소리꾼은 판소리 눈대목을 부르고, 기생은 교방춤을 췄다. 300년 前 사랑방 극장식 무대가 재현된 것이다.
먼저 정가를 불렀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황진이가 지었다는 서경덕과의 운우지정이 불리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고 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할 때 쉬어 감이 어떠하리." 운치있는 풍경에 알맞는 곡이었으나, 답사객들의 흥분된 맘을 달래기엔 2% 부족했다. 누군가 추임새를 넣었다.
"본색을 들어내! 본색을.." "와 아 ~ 까르르.." 웃음꽃이 방바닥에 말섬들이 콩구르 듯 쫘르륵 쏟아졌다. 명창의 소리는 창부타령, 뱃노래 등 경기토리로 이어졌다. 구들장에 붙은 엉덩이가 들썩였다. 마당 한 쪽 장독대에서 익고 있는 간장향기가 고혹(蠱惑)스럽게 코끝을 건드렸다.
그렇게 풍류 즐기기를 한나절 남짓하고 나니 짧아져 가는 가을해가 처마끝에서 두뼘쯤 내려가 있었다. 빨간 백열전등 같은 홍시들이 파란 하늘에 점점히 뿌려진 채 그런 우리들의 맘을 달구고 있었다. 고택에서 담근 된장을 샀다. 된장 한 덩어리가 300년 세월의 무게와 크기로 내 손에 잡혀왔다. 단 하루도 사람의 온기가 끊어진 바 없는 숨결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고택을 빠져 나왔다. 마을 고샅을 걸었다. 코스모스가 하늘거렸다. 황톳빛 지평선 너머 이화우(李花雨) 흩 뿌릴 제 다시 한 번 꼭 와봐야 겠다는 생각이 장구소리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