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소리꾼 정광수가 2003년 11월 3일 향년 95세로 종신(終身)했다. 타계 5일 후 11월 7일 유네스코는 판소리를 인류 무형유산으로 지정했다. 아마도 선생이 출상하신 날부터 서둘러 하루에 하나씩 판소리 다섯바탕을 통과시켰는지 모른다.
판소리는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배비장전, 옹고집전,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 강릉매화전 등 열두바탕이 전승돼 왔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바탕만 전해지고 있다.
판소리 사설(辭說)은 문학이다. 춘향가 사랑가 대목을 보면 ‘우리 둘이 사랑타가 생사가 한이 되어 한번 아차 죽어지면, 너의 혼은 꽃이 되고, 나의 넋은 나비되어, 이삼월 춘풍시 네 꽃송이를 내가 앉고 두 날개를 쩍 벌리고 너울 너울 춤추거든, 나인 줄을 알려무나...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이만한 사랑이면 목숨걸고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연서(戀書)이다.
소리꾼 유태평양 [사진=변상문 소장 제공] |
흥부가 제비노정기 대목 보면 ‘지지지지 주지주지(知之知之 主之主之 : 아시는지요 주인님), 거지년지 우지배(去之年之 又之拜 : 지난해 간 뒤로 또 뵙습니다요)요, 낙지각지 절지연지(落之脚之 折之連之 : 떨어진 다리를 이어 주셨으니), 은지덕지 수지차(恩之德之 酬之次 : 그 은덕을 갚으려고)로, 함지포지 우지배(含之匏之 又之拜 : 박씨를 물고 찾아와 뵙습니다)요.’ 이만한 시객(詩客)의 풍류면 세상 모든 여자를 품고도 남을만 하다.
파묘 당한 것 같이 휑덩그렁한 국악거리를 또 간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비록 꼬질꼬질하지만, 먼지낀 삼겹살 집 들창을 열고 그 안쪽을 들여다 보면, 황금보다 더 찬란하고, 싸이의 말춤보다 더 강렬한 춤과 소리가 들려온다.
흘러간 전설따라 삼천리 사연이 아니라 백범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문화강국 첨병의 모습으로 판소리는 달려오고 있다.
판소리는 인문학이요 삶의 냄새가 있는 예술이다. 그래서 참 착한 소리이다.
더질 더질 돌돌(咄咄)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